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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가장’(?) 박근혜가 받은 6억원의 실체
[집중분석] 전두환 한테 받아서 새마음병원에 투입한 근거 있나?
 
임병도 기사입력  2012/12/07 [0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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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3일 첫 대선 토론이 끝난직 후 보수언론들은 통합진보당 이정희 후보의 발언에 관해 토론 자격이 없느니, 네거티브 공세라는 등의 악의적인 발언을 쏟아내기 바빴습니다. 그러나 통합진보당 이정희 후보의 발언에서 팩트가 아닌 것은 거의 없습니다. 특히 '아이엠피터'가 주목하고 있는 것은 전두환으로부터 받은 6억 원에 대한 박근혜 후보의 답변이었습니다.

"당시 아버지(박정희 전 대통령)도 그렇게 흉탄에 돌아가시고 나서 어린 동생들과 살 길이 막막한 상황이었다. 아무 걱정 문제없으니 배려 차원에서 해주겠다고 하는데 경황없는 상황에서 받았다. 저는 자식도 없고, 가족도 없다. 나중에 사회에 다 환원할 것이다."

박근혜 후보는 박정희 대통령이 사망했을 당시, 어린 동생들과 살 길이 막막한 상황이었기에 경황없는 상황에서 받았고, 앞으로 사회에 다 환원할 것이라고 답변했습니다. 이런 박근혜 후보의 답변을 보면 옛 유신의 향수에 빠진 어르신들은 '그래, 어미,아비도 없이 어린 동생들과 살아가려면 힘드니 그 정도 돈은 받아도 되겠지'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러나 진짜 그럴까요?

'우리 집은 가난했어, 그래서 관리인 방, 가정부 방을 제외하면 달랑 방 3개뿐'

1979년 박근혜와 박근영 자매는 박정희 사망 이후 신당동 사저로 이사합니다. 당시 신당동 사저는 박정희가 군복무 당시인 1958년 충현동 집을 3백2십만 원에 팔아 4백5십만 원으로 사들여 최고회의의장 공관으로 이사하기까지 3년 6개월 동안 살았던 집입니다.



▲1979년 11월21일자 동아일보

박근혜가 입주할 당시 신당동 집은 대지 99평에 건평 39평의 단층기와집으로 방이 5개나 있는, 당시에는 보기 드물게 큰 주택에 속합니다. 1979년 11월21일 박근혜 자매가 신당동 집으로 이사 올 때의 동아일보 기사를 보겠습니다.

"이 집은 방이 모두 5개이나 관리인과 가정부 방을 제외하고, 그동안 옮겨온 짐을 놔눈 방 1개를 빼면 실제 사용할 수 있는 방은 2개뿐" (1979년 11월21일자 동아일보)

방이 5개나되는데, 관리인과 가정부가 상주하느라, 청와대에서 옮겨온 짐이 많아 박근혜,박근영 자매는 각각 방 하나씩만 사용할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마치 '우리 집은 가난해, 운전기사도 가정부도 가난해서 겨우 방 하나씩만 사용해'라고 하는 유머 같은 얘기가 동아일보 기사에 버젓이 보도됐습니다.

'소녀가장(?), 27살짜리 처녀 총재 박근혜'

박근혜 후보는 1979년 청와대에서 나올 때 어린 동생들과 막막했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당시 박근혜의 나이는 27살이었습니다. 동생 박근영은 25살로 서울대 작곡과를 졸업한 상황이었고,박지만은 육사 생도로 재학하고 있었습니다.



▲ 박정희 기일에 모인 박근혜,박지만,박근영 남매, 출처:경향신문

우리가 보통 부모가 돌아가신 소녀 가장을 불쌍하게 보는 이유는 이들이 경제적 능력이 없으면서 배워야 할 학생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당시 박근혜는 '새마음봉사단 총재'였고, 박근영은 서울대 작곡과 졸업생,박지만은 육군사관학교 재학생으로 나라에서 학비가 지원되는 상황이었습니다.

예전에 음악을 잠시 공부해서 알지만, 서울대 작곡과 졸업생은 그냥 아르바이트로 음악 과외만 해도 4인 가족 최저 생활비 정도는 충분히 벌 수 있습니다. 25살짜리 음악대학교를 졸업한 여동생과 얼마 안 있으면 육군 장교로 임관할 남동생 중에 도대체 누가 어린 동생이었을까요?



▲1979년 8월29일자 동아일보

1979년 27살의 박근혜는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요? 1974년 서강대를 졸업한 박근혜는 육영수 여사 서거 후 한국으로 돌아와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했습니다. 그런데 단순히 청와대 영부인 역할만 했던 것이 아니라, 각종 단체의 총재로 활동했습니다. 특히 1979년 박정희가 사망할 당시에도 '새마음봉사단' 총재로 전국을 누비고 다녔습니다.

'새마음봉사담' 총재로 활약하던 그녀가 월급을 안 받았을까요? 당시 새마음봉사단이 얼마나 대단한 권력 단체인지 보여주는 사례가 있습니다.

1979년 박근혜는 전국 지방신문사 사장 14명을 새마음봉사단 자문위원으로 임명합니다. 지방을 대표하는 국제,부산,매일,강원,전남,제주 등 전국 지방신문사 사장이 청와대에 와서 박근혜로부터 자문위원으로 위촉장을 받고 돌아갔습니다.

전국 지방신문사장을 단순 자문위원으로 위촉할 정도의 막강한 권력단체를 거느린 '총재'가 앞으로 살 길이 막막했다고 한다면 당시 미싱을 돌리던 여공들은 인생을 포기할 정도가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전두환에게 받은 돈 6억 원'

박근혜 후보가 전두환에게 받은 6억 원은 팩트입니다. 18대 대선 TV토론에서 뿐만 아니라 지난 한나라당 대선 경선에서도 박근혜 후보는 본인의 입으로 6억 원을 받았다고 수차례 밝힌 바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당시 6억 원의 가치를 놓고 말하는데, 주로 사용하는 방법이 1978년 당시 최고의 부동산으로 손꼽히는 은마 아파트를 예로 들기도 합니다.



▲1978년 은마아파트 분양광고

1978년 영동 은마아파트의 분양가를 보면 31평형이 2천9십만 원이었습니다. 전두환으로부터 받은 6억 원으로는 은마아파트를 대략 30채 살 수 있었고, 이를 지금 돈으로 환산하면 300억이라고 하기도 합니다.

지금 300억 원이냐 아니냐는 그리 큰 의미는 없습니다. 그러나 분명 당시 받은 현금 6억 원이 박근혜 후보의 재산으로 신고돼야 마땅합니다. 그러나 박근혜 후보가 신고한 총재산은 21억8100만 원입니다. 그녀가 가진 재산 대부분은 부동산인데, 성북동 자택은 신기수 회장이 무상으로 준 것이라고 친다면 아직도 6억 원의 행방은 묘연하기만 합니다.

'전두환으로 받은 6억 원을 새마음병원에 모두 쏟았다?'

박근혜 후보가 전두환으로부터 6억 원을 받은 사실이 자꾸 불거지자, 일부 박근혜 후보 지지자들은 박근혜 후보가 건립한 새마음병원에 모두 투자했으며, 이는 그녀가 사심이 없고 깨끗한 인물이라는 증거라고 반론하기도 합니다.

새마음병원은 명지학원으로 넘어갔지요.

"87년 10월에 넘겼습니다. 76년 12월 성결교 서울신학대학 건물을 구입, 야간병원으로 시작했어요. 경로정신을 함양하기 위해 주로 노인 분들에게는 무료로 치료해 줬고, 일반에겐 실비만 받았어요. 헌혈본부도 처음 이곳에 개설했습니다. 작년 10월 명지학원에 넘길 때까지 무료로 치료받은 사람을 따져보니까 연인원 4백 30만명이나 됐어요. 무료진료액을 수가로 환산하면 1백억원이 넘었구요. 그렇게 무료봉사 위주로 병원을 운영하다 보니까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는 새로운 의료시설이나 장비를 구입하는 일이 벅차고 힘들었어요. 능력있는 사람에게 넘기면 더 잘해 나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던 중인데 평소부터 잘아는 유상근선생이 이사장으로 계신 명지학원에서 인수의사를 밝혀왔어요. 그래서 넘기게 된 거죠." (1988년 11월13일 주간조선 인터뷰)

박근혜 후보 지지자들은 박근혜 후보가 1988년 주간조선과 인터뷰한 내용을 가지고 그녀가 사회사업을 자신의 돈으로 했다고 주장하는데, 이것은 오히려 그녀의 말과 모순되는 점을 발견할 빌미를 제공할 따름입니다.


박근혜 후보가 주장했던 새마음병원의 전신은 '경로병원'입니다. 경로병원은 박근혜 후보와 친했던 최태민의 '구국봉사단'이 설립한 병원입니다. 마치 박 후보가 자신의 돈을 투자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 병원 설립에 필요한 재원 2억 5천 만 원 중 1억 원은 최태민이 5천만 원은 이사진이,나머지 의료기기와 현찰은 일본 오사카시 지역 의사회 부회장이었던 '야마모토'라는 인물이 기부한 것입니다.

인터뷰 내용을 보면 마치 박근혜 후보가 자신의 돈을 투자해 건물을 사들인 것처럼 말하지만, 건물도 원장 임세욱이 무상임대를 해서 '경로병원'을 개원한 것입니다.




▲1979년 8월24일자 경향신문

'경로병원'은 1979년 '새마음종합병원'으로 개원을 합니다. 당시 설립자금은 8억1천5백만 원이 소요됐는데, 이 돈은 새마음봉사단에서 나온 것입니다. 1979년 8월23일에 개원한 '새마음병원'은 3년도 못 버티고 1982년 결국 이사회에서 폐원을 결정합니다.

박근혜 후보가 주간조선과 가진 인터뷰를 보면 몇 가지 오류가 나오는데, 첫 번째가 병원 이용객 현황입니다. 박 후보는 연간 4백30만 명이 이용했다고 하는데, 250개 병상을 가진 연세 세브란스 병원조차 2000년이 들어서 이용객 1백만이었다는 사실로 보면 연간이 아닌 누적 이용객 수가 아닌듯싶습니다.


그런데 이마저도 그리 신빙성이 있어 보이지가 않습니다. 새마음병원이 폐원할 당시에 이용객은 하루 1천 명이었고, 81년 무료환자는 54만8천여 명이라고 당시 신문이 보도했는데, 1977년 경로병원 하루 이용객 1백 50명을 함께 계산해도 2백만 명을 넘기는 어렵다고 봅니다.

두 번째는 적자규모입니다. 폐원 결정당시 신문을 보면 새마음병원의 연간 적자 규모는 대략 1억 원 정도입니다. 그렇다면 1979년부터 1982년까지 적자규모를 계산해도 3억 원가량 됩니다.

또한, 새마음병원은 새마음봉사단의 자금으로 운영됐는데, 새마음병원의 결정적인 폐원 이유 중의 하나는 1982년 6월26일 새마음봉사단이 해체됐기 때문입니다. 새마음병원이 해체되자 자금 조달이 어려워졌고, 결국 새마음병원을 운영하던 '사회복지법인 경로복지원'은 이사장 박근혜와 함께 이사회에서 폐원을 결정합니다.



▲1982년 7월13일 동아일보

지금까지 찾은 자료를 보면 박근혜 후보 개인 돈이 투입되거나 사용됐다는 흔적을 찾기가 어렵습니다. 분명 이사회에서 폐원 결정을 했는데도 박근혜 후보는 1987년 10월에 명지학원에 넘겼다고 했습니다. 아마 새마음종합병원이 아닌 새마음한방병원을 말하는 듯 한데, 새마음한방병원은 한약을 함께 팔아 이익을 남겼기에 존속할 수 있었고, 그렇다면 적자가 아니었다는 증거가 될 수 있습니다.

"근혜는 당시에 한마음병원이라는 저소득층을 위한 무료병원을 운영하고 있었습니다. 6억도 모자라서 영남대 월급 등등 투입할 수 있는 수입을 모조리 투입한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다 도저히 운영이 안되서 현재 명지대 병원으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박근혜 후보 지지자 사이에 돌아다니는 현금 6억 원에 대한 옹호 게시물 중)

누군가를 옹호하거나 변명하려면 정확한 팩트에 기반을 둔 자료를 찾아 자신의 주장을 제시해야 합니다. 도대체 아무리 계산하고 자료를 찾아봐도 박근혜 후보의 재산이 투입되지 않았는데, 무슨 근거로 전두환으로부터 받은 6억 원을 무료병원 운영을 위해 사용했다고 주장하는지, 도통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 12월3일 열린 대선 TV토론에서 세 후보. 출처:이투데이

박근혜 후보는 공중파 방송에서 전두환으로부터 받은 현금 6억 원을 국민에게 상기시켜 준 이정희 후보가 그리 곱게 보이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대통령 후보로 나온 사람이 그저 어린 동생과 생계가 막막한 상황에서 현금 6억 원을 냉큼 받았다는 점은 변명으로 부적절해 보입니다.

대지 99평에 건평 39평, 방 5개짜리 집에서 관리인과 가정부를 거느리고 사는 27살의 새마음봉사단 총재의 직함을 가졌던 박근혜 후보가 불쌍한 소녀 가장과 같은 어투로 변명하는 모습을 진짜 소녀가장이나 못 사는 사람이 본다면 분노까지 들 수 있는 발언입니다.

이정희 후보는 박근혜 후보를 가리켜 "유신독재의 퍼스트레이디"라거나 "여성 대통령이 아니라 여왕"이라고 했습니다. 독설에 가까운 비난이라고 하지만 진짜 서민이 볼 때 현금 6억 원을 받고 39평짜리 집에서 음대 졸업생 여동생과 육사에 다니는 남동생이 있는 박근혜 후보는 서민과는 전혀 먼 인생을 살던 사람임에는 분명합니다.

박근혜 후보가 도대체 언제쯤 현금 6억 원을 받아 어떻게 사용했고, 그 돈을 얼마나 사회에 환원할지, 시간이 흘러도 꼭 지켜보겠습니다. 그 이유는 박근혜가 받은 돈 6억 원은 박정희와 전두환의 돈이 아닌 대한민국의 재산이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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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2/12/07 [08:59]  최종편집: ⓒ pokro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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