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9년 11월박근혜씨는 박정희의 사망으로 청와대를 나와 신당동 집으로 들어갔다. ⓒ동아일보 PDF
2017년 3월 10일 대통령직에서 파면된 박근혜씨는 즉시 물러나지 않고, 사흘 만인 3월 12일 삼성동 자택으로 돌아갔습니다. 1979년 10월 26일 아버지 박정희가 사망하고도 한 달 가까이 청와대에 머물던 박근혜씨는 11월 21일에서야 신당동 자택으로 돌아갔습니다.
대한민국에서 유일하게 두 차례나 청와대에서 거주했던 박근혜씨. 어머니 육영수씨가 죽고 난 뒤에 실질적인 레이디퍼스트 역할을 했기에 두 차례 모두 대통령급으로 살아왔다고 봐야 합니다. 두 번이나 청와대를 떠났던 박근혜씨의 모습은 항상 뻔뻔했습니다.
독재자 아버지가 총에 맞아 죽었지만, 거의 한 달 가까이 청와대에 머물렀던 1979년 박근혜는 신당동 집으로 오면서도 당당했습니다. 동생 박근령씨는 차에서 내리자마자 기자를 피해 집 안으로 들어갔지만, 박근혜씨는 장관과 청와대 직원들을 거느리고 카메라 플래시를 정면으로 받았습니다.
파면 즉시 대통령직에서 물러나야 했지만, 이틀 밤을 더 잤던 2017년 박근혜씨는 지지자들에게 손을 흔들고 웃으면서 당당하게 삼성동 자택으로 들어갔습니다.
38년 전과 다를 바가 없던 박근혜씨의 청와대 퇴거 모습을 통해 그녀가 지금 겪고 있는 문제의 본질이 무엇인지 찾아봤습니다.
‘여전히 청와대에 살고 있다는 망상’
3월 10일 헌재의 파면 결정이 났지만, 박근혜씨는 즉시 청와대에서 나오지 않았습니다. 청와대는 삼성동 사저가 보일러 공사와 도배,장판 등의 수리가 필요하고 경호 문제 때문이라고 밝혔습니다.
1979년에도 박근혜씨는 신당동 집에 들어가기 전에 내부 수리를 하고 이삿짐을 5차례나 옮기는 등 거주할 수 있는 최상의 조건으로 만들었습니다.
과연 신당동이나 삼성동 집이 사람이 거주하지 못할 상황이었을까요? 아닙니다. 신당동 집에는 관리인이 상주해서 언제든 박근혜 일가가 올 수 있도록 유지했습니다.
최순실씨의 빌딩에서 일하던 관리인이었던 문모 씨는 재판에서 ‘최씨 지시로 대통령 관련 업무를 한 적 있는가’라는 물음에 “박 대통령이 국회의원 시절 정윤회 씨가 당시 박 대통령의 삼성동 사저에 가서 집을 수리해주라고 해서 그때 인사를 해 알게 됐다”고 대답했습니다. 이 사실을 통해 지속적으로 삼성동 자택이 관리됐음을 예상할 수 있습니다.
홍성수 숙대 법학과 교수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법이 모든 상황을 일일이 규정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라며 ‘즉시 효력이 있다면 지체 없이 떠나는게 ‘상식’이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각종 핑계를 대며 무려 사흘이나 청와대에 머물었던 박근혜씨의 주장은 이치에도 맞지 않고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잠시 유폐되는 왕족으로서 최소한의 대우를 받아야 한다는 생각이 있다면 가능성도 있습니다.
평범한 주택에 왜 못 들어가느냐는 일반 국민의 생각은 청와대급 시설을 필요하다는 그녀의 기준과는 동떨어진 세계에 불과합니다.
‘성녀로서의 삶을 살고 있다는 착각’
청와대를 떠나 삼성동 자택에 도착한 박근혜씨는 친박 의원들과 지지자에게 환하게 웃으며 인사를 하고 집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도저히 대통령직에서 파면된 사람이라고 보기 어려웠습니다.
대통령직에서 파면됐다는 것은 헌법을 수호해야 할 대통령의 임무를 위배한 범죄자라고 봐야 합니다. 대한민국을 혼란에 빠뜨리고, 분열을 유발한 원인이 그녀였습니다. 그러나 박근혜씨는 뻔뻔했고, 조금의 거리낌도 없었습니다.
1979년 독재자 아버지가 사망한 이후에도 그녀는 늘 뻔뻔했습니다. 2012년 뉴욕타임스 인터넷판은 “박근혜의 추종자들은 그녀를 부모를 모두 잃고 결혼과 출산도 포기한 채 나라에 모든 것을 바친 성녀처럼 본다”고 보도하기도 했습니다.
박근혜씨는 성녀도 나라를 위해 열심히 일한 대통령도 아니었습니다. 사익을 위해 대통령직을 이용하다 파면된 사람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박근혜씨는 스스로 대한민국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치고 있는 ‘성녀’로서의 삶을 살고 있다는 착각에 빠져 살고 있습니다. 박근혜씨는 어느 상황에서도 웃는 성녀로서의 삶을 보였을 뿐입니다.
‘목숨을 바치는 백성이 존재하는 여왕이라는 편집증’
박근혜씨는 청와대 대변인을 지냈던 민경욱 자유한국당 의원을 통해 헌재 파면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밝혔습니다.
제게 주어졌던 대통령으로서의 소명을 끝까지 마무리하지 못해 죄송스럽게 생각합니다. 저를 믿고 성원해주신 국민여러분에게 감사드립니다. 이 모든 결과에 대해서는 제가 안고 가겠습니다. 시간이 걸리겠지만 진실은 반드시 밝혀진다고 믿고 있습니다.
심상정 정의당 대표는 박근혜씨의 메시지에 대해 “청와대를 떠나며 국민들에 대한 사과대신 일부 지지자 결집을 위한 ‘대국민 투쟁선언’을 하였다”며 “마지막 도리마저 저버린 박근혜 전 대통령을 ‘가장 고약한 대통령’으로 기억할 것”이라며 비난을 하기도 했습니다.
박근혜씨는 검찰 수사나 구속영장 등에 응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왜냐하면 자신을 위해 목숨을 버릴 지지자들이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기 때문입니다.
친박 단체는 두 달 동안 삼성동 저택 앞에서의 집회 시위 신고를 했다고 합니다. 검찰 수사관들이 구속영장을 들고 가도, 친박 지지자들과 물리적인 충돌을 빚을 것입니다. 무리한 수사에 대한 여론이 조성되면 검찰로서도 제대로 수사를 하기 어렵습니다.
죽창을 들고 몸으로 여왕을 지키고 있는 백성에게 나와서 미소와 악수를 한다면, 미개한 백성들은 그녀를 위해 또다시 목숨을 버릴 것입니다.
박근혜씨는 아직도 자신의 잘못이 무엇인지 모르고 있습니다. 사익을 추구함으로 대통령직에서 파면됐다는 자체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대통령직은 자신의 가문이 쿠데타로 일구어낸 성과이기에 계속 이어지는 ‘소명’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1979년의 박근혜씨나 2017년의 박근혜씨나 공통점은 타의에 의해 청와대를 떠난 사실을 분개하고 인정하지 못했다는 점입니다. 그녀는 아직도 자신이 대통령직에서 잠시 물러나 있거나 잠깐 청와대를 떠나 있을 뿐이라고 생각하는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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