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에게 '계급장 떼고 치열하게 붙자'며 각을 세우는 등 평생을 원칙주의자의 길을 걸어왔던 김근태(64) 고문이 병마를 이기지 못하고 30일 오전 5시 반경 별세했다. 민주화의 대부로 정치개혁과 민주화 운동에 앞장 섰던 고(故) 김근태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은 수년째 파킨슨병을 앓아온 데다 지난달 말 뇌정맥혈전증으로 서울대병원에서 입원 치료를 받았으나 폐렴과 신장염 등 2차 합병증이 겹치면서 패혈증으로 한달만에 숨을 거뒀다. 경기도 부천 출생으로 재야에서 30년 가까운 세월을 민주화 운동에 앞장서 온 김근태 고문은 불과 수개월 전까지도 지병인 파킨슨병과 뇌질환으로 비록 몸은 수척해졌지만 "민심이 정부 여당을 이반했다"며 경고장을 보내는가 하면 마지막까지 "야권 연대를 통해 총선 승리와 정권 교체를 이뤄내야 한다"며 대통합의 필요성을 역설하기도 했었다.
경기고를 나와 서울대 경제학과에 입학했던 김 고문은, 박정희 전 대통령의 유신 독재에 맞서 학생 운동에 뛰어들어 청.장년시절 동안 민주화 운동으로 수배와 투옥을 반복하게 된다. 그리고 졸업 1년 전인 1971년 서울대 내란음모 사건과 1974년 긴급조치 위반으로 수배를 받아 피신 생활을 이어갔으나 전두환 군사정권 시절인 1983년 민청련을 결성해 85년 민주화운동청년연합, 민청련 초대 의장으로 활동하다 구속돼 혹독한 고문을 받기도 했다. 당시 남영동 대공분실에 끌려가 '고문기술자' 이근안 경감 등에게 10차례의 전기고문과 물고문을 받았는데 그를 죽음으로 내몰게 한 파킨슨병은 고문 후유증에 따른 것이다. 김고문은 1987년 당시 혹독한 고문 경험을 `남영동 대공분실'이라는 책으로 펴냈는데 미국 로버트케네디 인권상을 부인 인재근씨와 공동 수상하기도 했다. 30여년을 재야에서 민주화운동을 해온 김근태 고문은 이후 1995년 민주당에 입당하면서 정계에 진출해 노무현 정부 시절 보건복지부 장관(2004)과 열린우리당 의장(2006)을 역임하기도 했으며, 서울 도봉갑 지역구에서 15대부터 내리 3선을 했으나 2008년 제18대 총선에서 한나라당 신지호 의원에게 1200표 정도 차로 패하면서 낙선했다. 원칙주의자이기도 한 김고문은 김대중 정권 시절 동교동계 해체를 가장 먼저 주장했고, 탄핵열풍으로 열린우리당이 과반의석을 획득한 지난 2004년 총선 후 노무현 대통령이 "아파트 분양원가 공개는 개혁이 아니다"며 아파트 분양원가 공개라는 열린우리당 총선 공약을 부인하자 김근태 '의장'은 "계급장 떼고 치열하게 논쟁해보자"고 각을 세우기도 했었다. 평생을 민주화 운동을 위해 헌신한 김 고문은 전두환 군사정권 시절 당한 혹독한 고문 후유증으로 얻은 병마와 싸우다 부인 인재근씨와 자녀 병준·병민씨, 민주당 이인영 전 최고위원 등이 지켜보는 가운데 예순 넷의 한 많고 짧은 생을 마감했다. 빈소는 서울 종로구 연건동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차려진다./고민근기자 영상: http://youtu.be/vze8KyQSWG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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