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명여중에 위치한 옛 정명학교 선교사 사택-사진은 목포시민신문 © 폭로닷컴편집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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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1년 11월 14일 만세운동
67주년 광복절 맞아 재조명
“조선 사람이면 해야 할 일” [한국언론인총연대/폭로닷컴=노경선기자]
국가보훈처는 지난 13일 옛 목포 정명여학교(현 정명여중·고) 출신 김나열, 곽희주, 김옥실, 박복술, 박음전, 이남순, 주유금 씨 등 독립운동가 7명에게 대통령 표창을 추서했다.
국가보훈처에 따르면 이번 광복절 기념 정부포상을 받게 된 애국지사 198명중 여성 7명 모두가 목포정명여학교 출신인데다 이미 고인이 된 이들은 가족의 신청도 없이 오직 국가보훈처의 재조명으로 발굴됐다는 사실이 더욱 고무적이라는 평이다.
3·1운동 이후 국내 독립운동이 주춤하던 1921년 11월14일, 이들을 위시한 정명여학교 학생들은 워싱턴회의에 조선 독립문제 상정을 촉구하고자 손마다 태극기를 들고 학교 정문을 박차고 나갔다.
태극기를 든 학생들은 2㎞쯤 떨어진 목포시내 중심가의 일본영사관과 동양척식회사(현 목포근대역사관)로 행진했고 2년 전 3.1운동을 기억하는 목포 시민들도 삼삼오오 참여하기 시작해 어린학생들의 장한 일에 힘을 실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일본 경찰들은 이들을 막아서고는 15~19살 여학생 11명을 주모자로 체포했다. 이 중 곽희주, 박복술은 징역 10월, 김나열, 김옥실, 박음전, 이남순, 주유금은 징역 8월의 옥고를 치러야 했다.
고 김나열 씨의 딸 장경희 씨(74)는 “어머니는 생전에 유공자 신청 얘기만 나와도 ‘조선 사람이면 마땅히 해야 할 일’이라고 극구 거절했다.”며 “뒤늦게나마 어머니가 애국지사로 인정받아 기쁘다.”고 말했다.
고 이남순 씨의 조카 이상금(74)씨 역시 “어린 내게 ‘여자도 배우고 깨인 생각을 해야 한다’며 책을 권하던 고모의 활약상이 늦게라도 밝혀져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정명여학교는 호남 최초의 5년제 여성 중등교육기관으로 1903년 미국 선교사들이 설립했다. 당초 교명은 목포여학교였으나 1911년 정명여학교로 바뀌었다.
학생들은 1919년 3·1운동의 영향을 받아 목포에서 4·8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했고 1937년 일본의 신사참배 강요를 거부해 자진 폐교했다가 광복 후인 1947년 다시 문을 열었다.
정문주 정명여중 교장은 “강제 폐교 때 초기 자료 대부분이 사라졌지만 1921년 퇴학자가 확인되면 명예졸업장을 전달하겠다.”고 말하며 “학생들에게 올바른 역사의식을 심어 주기 위해 매년 만세운동 재현 행사와 함께 청소년 백일장, 답사 기행, 일제만행 사진 및 자료 전시 체험학습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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