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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세 20만원 셋집 사는 장준하의 ‘거지’ 유족들
장준하 선생 의문사 37주기, 이제는 국민이 진실을 밝혀내야 한다
 
이기명 기사입력  2012/08/16 [17:30]
1953년 전쟁은 치열했다. 동족이 죽이고 죽는 골육상쟁의 부끄러운 전쟁이었다. 부산은 살기위해 고향을 떠난 피난민으로 바글거렸다. 이승만은 국민을 적지에 두고 도망을 쳤어도 독재는 여전했다. 국회의원을 버스에 실어 개처럼 끌고 다녔고 빨갱이로 몰았다. 그런 시절, 어둠을 밝히는 하나의 촛불이 외롭게 타고 있었다. <사상계>였다.
지식인들은 목이 타는 갈증에 시달리고 있었다. 언제 끌려갈지 모르는 전쟁. 가슴을 짓누르는 독재. 입에 풀칠도 하기 어려운 가난. 앞을 막고 있는 것은 거대한 절망의 벽이었다.
그런 시절에 촛불 하나가 켜졌다. <사상계>가 창간된 것이다. 혹독한 이승만의 독재정치에 과감하게 떨쳐 일어나 독재를 비판하고 민주주의를 외치는 외로우나 힘찬 목소리. 그것이 바로 장준하 선생이 창간한 잡지 <사상계>였다.

▲ 1962년 장준하 선생이 막사이사이상 언론부문상을 수상한 후 귀국해 환영을 받고 있다. 오른쪽은 1953년 피난지 부산에서 창간된 <사상계> 창간호 표지  

지식인들의 눈이 <사상계>로 쏠렸다.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대신 해주고 늙은 독재자 이승만에게 거침없이 비판의 화살을 날리는 사상계는 어쩌면 지식인들에게 또 다른 구원이었을 것이다. 당시 <사상계>를 읽는 것은 지식인의 자부심이었다.
전쟁이 끝나고 4.19가 터지고 자유당 독재는 무너졌으나 또 다른 독재가 국민의 숨통을 조였다. 박정희 군사독재였다. 이승만 독재보다 더 한 박정희의 독재였다. 이승만은 그래도 독립운동을 했다는 명분을 가진 대통령이었지만 박정희는 일본천황에게 충성을 혈서로 맹서한 친일장교 출신이다.
장준하 선생은 박정희를 정면에서 비판했다. 박정희의 면전에서 질타했다.
“너는 일제가 그냥 계속됐다면 만주군 장교로서 독립투사들에 대한 살육을 계속했을 것이 아닌가”
장준하 선생이 박정희에게 눈의 가시였을 것은 너무나 분명하다. 정적이라면 가차 없이 처단하는 잔인한 박정희가 장준하 선생을 살려 둔 것은 바로 장준하 선생을 따르는 민심이 두렵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60-70년대에 걸쳐 37번의 체포와 9번의 투옥을 견디며 박정희 독재와 맞섰던 장준하 선생은 박정희에게는 꿈에 보일까 두려운 존재였을 것이다.
1975년 8월17일, 장준하 선생은 경기도 포천군 이동면 약사봉 절벽 14미터 아래에서 시신으로 발견된다. 14미터 암벽에서 ‘추락사’ 했다는 것이다. 그것이 경찰의 발표였다. 아니 박정희 정권의 발표였다.
“절벽에서 떨어졌다는데, 주검이 너무도 멀쩡했고, 멍도 없고 오른쪽 귀 뒤쪽에서만 피가 나왔다. 양팔 겨드랑이 쪽엔 멍이 있었는데 누군가 잡아끌고 갈 때 난 것처럼 보였다.
시신을 보자마자 ‘각본이구나’ 생각이 들었다. 의사 세 분을 문상객처럼 모셔와 주검을 살펴보도록 했다. 귀 뒤 상처에 성냥개비를 집어넣으니 다 들어갔다. 의사들이 만져보더니 ‘뒷골이 함몰된 것 같다’고 했다.
당시에도 ‘약사봉 현장에서 떨어진 것은 아니다’라는 말이 퍼졌다. 아버지가 추락한 것을 봤다는 증언도 거짓으로 드러났다. 결론은 아버지가 추락 현장에 가지 않았고, 다른 데서 변을 당한 뒤 시신을 옮겨놓은 것으로 볼 수밖에 없었다."
장준하 선생의 아들 장호권의 증언이다. 당시 국민들도 장준하 선생의 추락사를 믿지 않았다. 그의 죽음은 바람에 실려 날라 다니는 ‘임금님의 귀는 당나귀 귀였다’ 금기어가 되어 버린 장준하 선생의 죽음. 입만 뻥끗해도 긴급조치 위반이었다.
이제 국민이 밝혀야 한다.
37년에 세월이 흘렀다. 참으로 모진 세월이었다. 장준하 선생의 가족은 거지가 됐다. 마음이 있어도 도울 수가 없었다. 감시의 눈은 어느 누가 쌀 한가마를 가져와도 끌려가 반죽음이 됐다. 이렇게 잔인할 수가 있단 말인가.
장준하 선생의 가족은 보증금 1000만원, 월세 20만원의 셋집에서 연금 60만원으로 지낸다. 가난한 것이 부끄럽지 않다. 잘 살기를 바라지도 않았다. 다만 장준하 선생의 사인이 명백히 밝혀져야 된다는 생각은 변할 수 없다.
이제 장준하 선생의 사인은 밝혀질 것이다. 그것이 하늘의 뜻이다. 흔히들 국민을 하늘이라고 한다. 세상에는 비밀이 없다고 하고 진실은 반드시 밝혀진다고 하지만 아직도 밝혀지지 않은 비밀들이 얼마나 많겠는가. 더구나 포악한 독재정권 아래서 저질러진 추악한 범죄들은 아직도 무수히 어둠속에 숨어 있다.

▲ 장준하 선생이 '의문사'한 포천 약사봉 계곡 현장에서 동지, 후배들이 돌비석을 세운 후 추모제를 지내고 있다. (출처-<장준하평전>)

이런 범죄들을 모조리 밝혀내야 한다. 그리고 저지른 범죄에 합당한 처벌을 받아야 할 것이다. 복수의 차원이 아니라 다시는 그런 범죄를 저지르지 않고 지은 죄는 반드시 응징된다는 교훈을 남기기 위해서다.
박정희 전두환 군사독재 시절, 수많은 양심적 인사들이 독재를 비난하고 반대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억울한 죽음을 당했다. 서울 법대 최종길 교수같은 경우도 강의 잘 하고 있는 멀쩡한 교수를 정보부로 잡아다가 고문으로 살해하고 창밖으로 집어 던져 자살을 가장했다. 1973년 10월 16일에 잡혀가 사흘이 지난 19일 새벽에 시체로 발견됐다. 사람으로 할 짓인가. 이런 경우가 바로 개가 부끄럽다는 것이다.
온 국민이 궐기해서 장준하 선생의 사인을 명백히 밝힐 것이다. 여기에 앞장 설 사람이 있다. 바로 새누리당의 박근혜 후보다. 장준하 선생 개인의 죽음이라고 할 것이 아니라 집권 여당의 실력자로서, 또 차기의 유력한 대통령 후보로서 진상규명에 나서야 한다. 설사 그것이 박정희 정권의 치부를 백일하에 들어내는 것일지라도 국민에게 지도자로서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정치는 죽기 살기가 아니라 함께 사는 것이다. 국민과 함께 행복을 찾아가는 것이다. 장준하 선생같은 분이 수명을 다 해 살았다면 이 나라 민주주의를 위해 얼마나 큰 공헌을 했을 것인가. 장준하 선생의 영결식 미사에서 김수한 추기경은 이렇게 말했다.
“장준하의 죽음은 별이 떨어진 것이 아니라 더 새로운 빛이 되어 앞길을 밝혀주기 위해 잠시 숨은 것뿐”
이제 장준하 선생의 넋이 빛나는 별이 되어 우리들 곁으로 돌아 올 것이다. 국민들이 그렇게 믿고 있다. 이것이 정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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