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우리는 약육강식의 생존법칙이 작동되는 세상을 ‘정글’이라는 용어로 표현합니다. ‘정글 자본주의’라는 표현이 아마도 대표적 사례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요즘 들어 부쩍 많이 쓰이는 ‘헬조선’은 ‘정글’과 같은 뜻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언뜻 보면 같아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여기에도 차이가 있지요.
‘정글’도 ‘정글’ 나름의 법칙이 있습니다. 육식동물 사자는 초식동물을 잡아먹을 뿐 먹음직스러운 풀과 과실을 두고 하마나 기린과 싸우지는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초식동물 하마는 아무리 덩치가 크더라도 풀만 먹을 뿐 초식동물을 잡어 먹기 위해 사자나 악어와 싸우지는 않습니다. 이런 식으로 '정글'은 자연스럽게 영역과 질서가 형성되어 공존이 가능해지는 것이지요.
그런데 인간들이 사는 세상에서는 이와 같은 최소한의 영역과 질서마저도 파괴되어 버렸습니다. 엔지니어이면서 변호사를 겸업하려는 사람, 의사이면서 벤처기업가를 겸업하려는 사람, 변호사이면서 방송인을 겸업하려는 사람, 방송인이면서 정치인을 겸업하려는 사람, 정치인이면서 사업가를 겸업하려는 사람, 언론인이면서 정치인을 겸업하려는 사람, 교수이면서 관료를 겸업하려는 사람, 교수이면서 사업가를 겸업하려는 사람… 정말 끝없는 행렬이지요.
왜 이런 일이 벌어질까요? 사회 도처에서 무한 경쟁이 벌어지면서 그 동안 유지되어 왔던 질서가 곳곳에서 무너져버렸기 때문입니다. 지식인이 지식인만으로는 만족 못하고, 사업가가 사업가만으로는 만족 못하고, 전문가가 전문가만으로는 만족 못하고, 방송인과 언론인도 인기와 영향력 뿐 아니라 권력과 자본까지 얻으려고 덤벼듭니다. 좋게 말하면 영역 파괴이고 융합이지만 나쁘게 말하면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모두가 생존을 위한 전쟁을 벌여야 한다는 것이지요. 그러다 보니 점점 그 싸움터가 더 밑으로 내려가지요.
예전에는 같은 업종에 있는 경쟁자들만 생각하며 마케팅과 영업 전략을 짜면 되었지만, 이제는 언제 어떤 다른 업종과 다른 영역에서 선수들이 진입할지 알 수 없기에 사실상 속수무책으로 당하며 멘붕에 빠질 수밖에 없습니다. 방송사의 공채 탤런트의 진짜 경쟁자가 이제는 오디션 통과자뿐만이 아닌 대한민국의 모든 전문직업인이 되어버렸습니다. 변호사, 의사, 한의사, 경찰관, 트레이너, 회계사, 기자, 헤드헌터 등과 경쟁해야 되는 시대입니다.
물론, 개인적인 스펙만을 놓고 보면, 변호사 본연의 업무도 어느 정도 잘 하면서 방송 출연도 하고 대학교 강의까지 하는 사람이 더 우수한 사람으로 평가받기는 하겠지요. 그러나 여기에는 중요한 알맹이가 하나 빠져 있습니다. 애시당초 법조인의 길을 가고자 했던 그 초심은 어디로 갔냐는 거지요. 그냥 능력 있고 인기 많고 돈 많은 것에 만족하며 살아갈 거였다면 왜 굳이 로스쿨을 진학하고 법조인으로서의 소양을 쌓았냐는 겁니다. 분명 돈과 인기와 권력이 법조인의 삶을 살기로 결심한 초심은 아니었을 텐데…
우리보다 자본주의 역사가 더 오래된 미국, 유럽 등 선진국에서 ‘헬미국’ 혹은 ‘헬독일’ 단어가 등장하지 않는 이유는 그곳의 지식인들이 우리처럼 더 많은 스펙을 쌓아서 여러 방면의 활동을 할 능력이 없어서가 결코 아닙니다. 그것을 관철시키고도 남을만한 충분한 능력을 갖고 있지만 스스로 절제하고 자신의 이익보다는 사회 공동체의 이익을 위해 봉사하는 마음을 갖기 때문입니다. 어떠한 지식인도 국민 위에 군림하지 않고 대놓고 밥그릇 싸움에 뛰어들지 않는 이유는 그것을 감행할만한 지식과 용기가 없어서가 아니라 사회 공동체의 다양성과 관용을 존중하기 때문입니다.
폴리페서(권력추구형 학자)와 폴리널리스트(권력추구형 언론인)가 유독 대한민국에서 넘쳐나는 이유도 자신이 갖고 있는 힘의 원천이 어디로부터 왔고, 그 끝이 어디를 향해야 하는지에 대해 무지하고 무책임하기 때문이죠. 선진국 학자나 언론인이 권력 중심에 진입하지 않는 이유는, 그들에게 그럴만한 능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그들의 힘의 원천이 어디로부터 왔고 그 끝이 어디를 향해야 하는지 지식인으로서 너무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왜? 그것이 그들이 존재하는 이유이기 때문이죠.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우리나라에서 권력/재벌/언론의 유착과 결탁이 일상화된 가장 큰 이유는, 비록 각자 하는 일은 다르지만 추구하는 목표가 똑같기 때문입니다. 정치권력을 빼앗고 지키기 위해서만 존재하는 정치인, 현실권력을 지키고 강화하기 위해서만 존재하는 재벌, 그리고 지식인의 탈을 쓰고 권력 카르텔의 중심부에 진입하고 남아있기 위해서만 존재하는 언론인들로 사회가 넘쳐나기 때문일 것입니다.
만일 이들 중에서 단 하나라도 자신의 권력이 어디로부터 왔고 그 끝이 어디를 향해야 하는지를 올바로 인식하고 행동하는 집단이 있었다면 이미 우리 사회는 선진국 대열에 합류하고도 남았을 것이다. 미국과 유럽은 1인당 GNP 5천 달러일 때에 이미 선진국이었고, 일본은 2만 달러일 때에 이미 선진국이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3만 달러에 근접했지만 여전히 선진국과는 거리가 멀죠. 과연 4만 달러 혹은 5만 달러가 된다고 해서 대한민국이 선진국이 될 수 있을까? 결코 그렇지 않을 것입니다.
그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진짜 사업가, 진짜 권력자, 진짜 지식인을 우리 사회에서 만나고 싶습니다. 탐욕과 증오로 가득 찬 사업가가 아닌 절제와 관용이 충만한 사업가를 만나고 싶습니다. 갈등과 혼란을 활용하여 자신의 권력만을 극대화하려는 권력자가 아닌 화합과 포용으로 사회 공동체를 건강하게 세우고 이끌어가는 권력자를 만나고 싶습니다. 독선과 적개심으로 가득 찬 지식인이 아닌 포용과 화합의 메시지를 전하는 지식인을 만나고 싶습니다. 자신이 갖고 있는 것 중 극히 일부만 내세우고 자랑하기 때문에 도무지 그들이 진정 소유하고 있는 것이 얼마나 되는지 어느 수준인지 가늠조차 할 수 없는 그런 진짜 사업가, 진짜 권력자, 진짜 지식인을 만나고 싶습니다.
사실, 그 해법은 간단합니다. 대한민국의 모든 기득권자들이 스스로의 존재를 규정하는 본질적인 것을 제외한 나머지를 모두 내려놓으면 됩니다. 사업가는 돈을 얻는 대신 명예와 권력을 내려놓으면 되고, 권력자는 공적인 권력을 얻는 대신 돈과 사적인 영향력을 내려놓으면 됩니다. 지식인은 명예를 얻는 대신 돈과 권력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으면 됩니다. 그렇게 되면 사업가와 권력자가 반목할 일도 없고, 권력자와 지식인이 갈등을 빚을 일도 없고, 지식인과 사업가가 밀고 당기는 유착과 폭로의 게임을 벌일 필요도 없지요. 이처럼 다시 사회에서의 영역과 질서가 복원될 때 비로소 헬조선은 사전에서 완전히 사라질 수 있을 것입니다. 그게 기성세대인 우리들의 의무입니다.
모두가 불안하고, 모두가 모두를 의심하고, 모두가 모두를 향해 칼을 겨누는 '만인의 만인을 위한 투쟁'이 대한민국에서 더 이상 지속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앞으로 우리는 유심히 지켜보아야 합니다. 진짜 사업가가 누구인지, 진짜 권력자가 누구인지, 그리고 진짜 지식인이 누구인지. 그리고 그들이 각각의 영역에서 주류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우리에게 주어진 권한을 십분 활용해야 합니다. 선거에 임하는 태도, 언론을 대하는 태도, 제품과 브랜드를 선택하는 태도 등에서 그 기준을 확실하게 세우고 실천해야 합니다.
이진우 / 한국정치커뮤니케이션센터(KPCC) 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