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3년 어느 초겨울 새벽, 제가 살던 미국 버지니아 주 아파트에서 비상벨이 울렸습니다. 무슨 일인가 궁금해서 집 밖으로 나가보니 적지 않은 사람들이 슬리핑백과 비상식품을 챙겨서 계단으로 내려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바깥을 보니 특별히 연기나 타는 냄새도 없었고, 소방차나 구급차도 와있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가족들에게 이야기하고 저만 대표로 아파트 1층 현관으로 내려갔지요. 그런데 놀라운 것은, 우리 집을 제외한 모든 주민들이 완벽하게 비상시에 대비한 짐을 꾸린 채로 일사불란하게 복도에 앉아 있었다는 점입니다. 그러면서 보안 관계자가 올 때까지 1시간 30분 동안 묵묵히 기다렸다는 거지요. 불평 한 마디 없이…
결국, 보안 관계자가 와서 점검 결과를 설명했고, 특별한 이상이 없다는 것을 확인한 후에 모두 다시 자기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런데 40분 후 또다시 비상벨이 울렸습니다. 순간적으로 저는 화가 나고 짜증이 났지만, 그래도 꾸~욱 참고 다시 1층 현관으로 내려갔지요. 그런데 이번 역시 모든 주민들이 완벽하게 준비한 채로 또다시 일사불란하게 복도에 앉아 있는 거였습니다. 이번 역시 불평 한 마디도 없이… 정말로 믿을 수 없는 광경이었지요. 그리고 1시간 후 보안 관계자가 나타나서 특별한 이상이 없다고 설명하자 또다시 아무 말 없이 자기 집으로 돌아가는 거였죠.
이번만큼은 도저히 화를 참을 수 없었던 저는 보안 관계자에게 “두 번 씩이나 오작동 했으면 최소한 주민들에게 납득할만한 해명, 불편을 끼친 것에 대한 사과, 그리고 재발방지를 위해 어떠한 조치를 할 것인지 정도는 말해줘야 하는 거 아니냐?”며 따져 물었더니, 이미 특별한 점이 없다고 설명했고, 자신들은 규정과 절차에 의해 움직였으므로 사과할 필요성은 못 느낀다는 답이 돌아왔습니다. 그 부분에서 폭발한 저는 “비상벨 교체해야 되는 거 아니냐?”고 따졌죠. 그랬더니 놀랍게도 답은 “그럴 수 없다. 울려야 할 때 안 울리는 것이 문제이지, 민감해서 울리는 것에 대해서는 어쩔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허허… 이것 참…
물론, 제 상식으로는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더 이상 다투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판단했고, 그래서 저도 집으로 돌아갔지요. 그 후에도 몇 차례 비슷한 상황이 벌어졌지만, 어느 새 저도 익숙해졌고, 다른 한 편으로는 모든 사람들이 주민들의 안전을 위해 애쓴다는 점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고, 스스로도 진짜 위급한 상황에 대비해서 훈련한다는 마음가짐으로 너그럽게 지시에 따르고 상황을 받아들이게 되었지요.
제 이야기를 듣고 여전히 이해하기 어려우신 분들도 있겠지만, 이것이 안전한 사회로 가기 위한 정도입니다. 안전이라는 것은 가만히 앉아서 누군가가 알아서 지켜주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 내 스스로가 안전을 위해 번거로움과 수고스러움을 감수할 때 ‘안전한 사회’가 이루어지는 것이지요.
그 뿐만이 아닙니다. 제가 처음 미국에 갔을 때 스쿨버스가 반대 편 차선에 적색 신호등을 켜고 정차해있는데, 경험이 없다보니 그냥 지나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쇼킹한 상황이 그 다음에 벌어졌습니다. 경찰이 우리 집으로 출동한 거지요. 당황해서 나가보았더니 주민으로부터 신고가 들어왔다는 겁니다.
그래서 정황을 설명했더니, 미국에 온 지도 얼마 안 되었고, 처음이라고 하니 이번만 특별히 봐주지만 다음에 또 걸리면 그 때는 상당한 금액의 벌금형이 불가피하다고 경고하는 거였습니다. 누가 저를 신고했는지 모르지만, 함께 사는 지역주민 모두가 공동운명체라는 생각을 갖고 시민의식을 발휘하여 신고를 한 것만큼은 분명히 해보였습니다. 이것 또한 번거롭고 수고스럽지만 ‘안전한 사회’를 위해 꼭 필요하지요.
우리 모두는 안전한 사회를 꿈꿉니다. 다시는 세월호 참사와 같은 일이 없어야 한다고 입을 모읍니다. 우리 모두는 깨끗한 사회를 꿈꿉니다.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단어가 사라져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입니다. 우리 모두는 정직한 사회를 꿈꿉니다. 땀 흘려 일한 만큼 정직하게 결실을 가져가야 한다고 한결 같이 주장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그런 사회가 도래할 수 있을까요? 대통령을 잘 뽑으면? 국회의원을 잘 뽑으면? 시장과 군수를 잘 뽑으면?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답은 오직 하나입니다. 우리가 변해야만 합니다.
대한민국이 헬조선이 되어버린 이유는, 우리 사회에서 ‘우직한 사람’이 사라져버렸기 때문입니다. 경찰은 앞뒤 가리지 않고 범죄자를 쫓고 잡아야 합니다. 검찰은 앞뒤 가리지 않고 범법자를 기소해야 합니다. 그리고 법원은 앞뒤 가리지 않고 위법행위를 단죄해야 합니다. 그러나 어느 시점부터인지 우리 사회는 고려하고, 배려하고, 고민해야 할 일들이 많아졌습니다. 좋게 말하면 정상참작이고 정치력이지만, 나쁘게 말하면 개인과 조직의 재량과 방향성이 너무 많이 공적 행위에 반영되는 것이지요. 모두가 똑똑하다 보니 벌어진 일입니다.
선진국에서의 대다수의 경찰관들은 승진에 큰 관심이 없습니다. 그냥 처음 제복을 입었을 때부터 은퇴할 때까지 큰 욕심 없이 우직하게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하고 명예롭게 옷을 벗습니다. 검사와 판사도 마찬가지지요. 그러나 우리는 온통 경쟁하고 승진을 위한 줄타기를 하는 데에만 급급합니다. 그나마 경찰과 법원은 양호한 편이지만 검찰은 개인이기주의와 조직이기주의가 극에 달해 있습니다. 최근 들어 관객 흥행몰이를 하고 있는 영화들 속에서 묘사된 검찰의 모습이 모두 똑같습니다. 공권력을 사적인 이익을 위해서만 쓰는 것이죠.
우직한 군인, 우직한 경찰관, 우직한 검사, 우직한 판사, 우직한 교사, 우직한 교수, 우직한 공무원, 우직한 정치인… 왜 우리 사회에서는 찾아보기가 어려운 것일까요? 우직해서 승진도 못하고 출세도 못해서 바보 취급을 하다 보니 어느 새 씨가 말라버린 것은 아닐까요? 이제 우리 주변에서 그런 사람들을 찾아내야 하고, 그들에게 관심과 성원을 보내야 합니다. 앞으로 선출하게 될 선출직 공무원들도 적지 않은 수를 이러한 우직한 사람들로 채워야 합니다. 다른 것은 관심 없고 오직 자신에게 주어진 일에 대해 우직하고 흔들림 없이 해내는 사람이 진짜 우리 사회의 영웅들로 대접받아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 사회가 바뀝니다.
늦은 감이 있지만 이제라도 우리 스스로가 달라져야 합니다. 비행기나 선박이 엔진 점검을 이유로 출발시간이 늦어지더라도 항의하거나 환불을 요구하면 안 됩니다. 아무리 급하더라도 아이들 통학로에서는 스스로의 마음을 다스리면서 20km 이하로 서행해야 합니다. 교통신호도 지키고 교통법규도 지켜야 합니다. 더 나아가 우리 주변에서 문제가 있거나 위험하다고 판단되면, 혹 내가 그곳에 자주 갈 일이 없더라도 문제를 제기하고 신고를 해야 합니다. 내가 그렇게 해야 우리 아이들이 움직이는 곳에서도 누군가가 그런 일을 하지 않겠습니까? 내가 먼저 실천해야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할 것입니다.
제가 꿈꾸는 사회…그것은 우직한 사람들이 묵묵히 자신의 일을 하는 그런 사회입니다.
이진우 / 한국정치커뮤니케이션센터(KPCC) 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