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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의 자주와 통일, 이육사·김남주의 시와 삶’ ②
김남주, 전사에 이어 ‘시인’으로 거듭나다
 
김갑수 기사입력  2017/08/25 [14:19]

김남주, 전사에 이어 ‘시인’으로 거듭나다
광화문에서 띄우는 편지 - ②


살아있을 때 “어어, 나는 시인이라기보다, 무슨 글쟁이라기보다 전사여, 전사!”라고 즐겨 말했던 시인. 피·칼·학살·전사·비명·피투성이·죽창·대창·도살장 등 강렬한 언어들로 전투적 서정성을 빚어내던 시인 김남주(金南柱, 1946~1994)가 걸어간 길은 “해방의 길 통일의 길 가시밭길 하얀 길”이다. (장석주, <혁명과 투쟁의 시인> 중에서)


이처럼 김남주 시인에 대한 평가는 ‘해방과 통일을 향해 질주한 전사’라는 말로 요약됩니다. 나는 여기에 동의하지만, 이렇게만 말하기에는 시인으로서, 예술가로서의 김남주가 가려질 수 있습니다. 사실 김남주가 선택한 주제들은 예술적으로 형상화하기가 대단히 난감한 것입니다.


남주의 시 <조국은 하나다>,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은 저항시의 절창입니다. 저는 (한국 소설가의 90%와 함께) 한국 시인의 99%는 가짜라는 편견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은 한국 시인 중 1%만이 진짜라는 말과 같지요. 남주는 1%의 시인입니다. 아니 그 1% 중의 1%에 해당되는 빼어난 시인이라는 것이 저의 견해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주의 시들은 육사의 시들에 비해 아쉬움이 있습니다. 남주의 시는 단연 운동과 투쟁력을 고취하는 데 출중합니다. 하지만 과연 그의 시가 육사의 시보다 더 오래 살아서 많이 읽힐지는 미지수입니다.


남주의 초기 시들은, 아니 남주의 청년 시절은 다소 이념과 원리에 천착해 있지 않았나 합니다. 육사가 의열단의 단원이었듯이 남주는 남민전의 요원이었습니다. 아마도 육사와 남주의 차이는 바로 의열단과 남민전의 차이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남주는 전사에 이어 시인으로 거듭납니다. 나는 개인적으로 그의 후기 시를 더 값지게 평가합니다. 남민전 사건으로 투옥된 남주는 출소 후 부인 박광숙에게 보낸 편지에서 말합니다.

“...그 짧은 전사 생활을 통해서, 이 어처구니없는 패배를 통해서 내가 가장 뼈저리게 깨달았던 것은 역사적인 사업은 ‘열정’만 가지고는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이오. 지혜가 필요했던 것이오. 물론 이것은 상식이오. 그러나 사람들은 상식을 소홀히 하기가 일쑤인 것이오...”


남주의 시에 증오와 저주보다는 성찰과 통찰의 사색이 나타나기 시작하는 것은 후기입니다.


나하고는 무연한 것이
창 너머 담 밖에 와 있나 보다


봄이, 자연이, 멀리에 가까이에
푸르고 푸른 나무들은
햇살 머금어 더욱 빛나고
하늘하늘 가지들은 바람이 일어 춤을 추겠지
그리고 산과 들에는 이름 모를 새들
날 저물어
금빛 나래 접으며 황혼을 펼치겠지 부챗살처럼
그러나 어디에 있는가, 나의 날개, 나의 노래는
나의 햇살, 나의 바람, 나의 혼은
어디에, 어디에 내가 있는가?


황혼에 쓰러진 거목이 되어 버림받고 있는가
고여 있는 바닥 어둠의 뿌리가 되어 썩어가고 있는가
자유의 나무가 되어 피 흘리고 있는가


마지막까지 남은 한 마리의 작은 새가 되어 절망을 노래하고 있는가
떨어진 대지의 별, 자기의 땅에서 유배당한 몸이 되어
증오의 벽을 허물고 있는가
- 김남주, <봄>, 1987



남주는 왜 자기의 땅에서 추방당하였는지를 성찰합니다. 그는 왜 자기가 자유의 나무가 되어 피 흘리며, 마지막 남은 한 마리의 작은 새로 절망을 노래하지 않으면 안 되는지를 물었습니다. 남주는 1974년 등단한 이후 작품 활동보다 민중문화운동이나 농민운동에 더 열정적으로 투신했습니다.


그러다 1979년 ‘남민전’, 즉 ‘남조선민족해방전선’의 핵심인물로 구속되어 15년형이라는 중형을 선고받고, 아홉 해나 감옥에 있다가 풀려났습니다. 그는 이제 창밖의 봄에서 또 다른 세계를 인지할 정도로 사색의 범위가 확장되었습니다.


암흑의
시대의
시인의 일 그것은 무엇일까
침묵일까
관망일까
도피일까
밑 모를 한의 바다 넋두리일까


무엇일까
박해의
시대의
시인의 일 그것은
짓눌린 삶으로부터
가위눌린 악몽으로부터
잠든 마을을 깨우는 일
첫닭의 울음소리는 아닐까
- 김남주, <시인이여> 1987



김남주는 죽었지만 여전히 ‘살아’있다. 누구보다도 힘차고 생생하게 그의 굽힐 줄 모르는 불굴의 정신으로 살아있다. 이 암흑의 시대, 박해의 시대를 침묵과 관망과 도피를 넘어서서, 우리의 짓눌린 삶을 제대로 펴고, 우리를 가위눌린 악몽에서 깨우는 첫닭의 울음소리로 살아있다.(장석주)


분단과 통일의 절규, 박봉우, 신동엽, 김남주



분단과 통일을 문제 삼은 시들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1,000년 만에 찾아온 민족 분단 그리고 벌써 고희를 넘기고 있는 분단의 연령에 비하면 너무도 적습니다. 고작해야 10 ~ 20명 정도의 시인이 분단과 통일에 관한 시를 문학사에 남기고 있을 따름입니다.


김남주의 시 <조국은 하나다>와 함께 분단과 통일을 노래한 절창의 시 3편을 소개하겠습니다. 먼저 박봉우의 <휴전선>입니다. 박봉우는 김남주와 동향(호남)이면서 동문(전남대)인 시인입니다. 김남주와는 띠동갑 12세 연상입니다.


박봉우의 <휴전선>이 나온 것은 1956년, 6.25 전쟁이 끝난 지 3년, 그야말로 살벌한 반공의 시대였습니다. 누구도 이제 막 생겨난 삼엄한 휴전선을 문제 삼을 꿈도 꾸지 못할 때, 그의 당돌한 로맨티시즘은 휴전선을 두고 대치하고 있는 조국의 암담한 현실을 정면으로 거론했습니다.


산과 산이 마주 향하고 믿음이 없는 얼굴과 얼굴이 마주 향한 항시 어두움 속에서 꼭 한 번은 천둥 같은 화산이 일어날 것을 알면서 요런 자세로 꽃이 되어야 쓰는가


저어 서로 응시하는 쌀쌀한 풍경. 아름다운 풍토는 이미 고구려 같은 정신도 신라 같은 이야기도 없는가. 별들이 차지한 하늘은 끝끝내 하나인데… 우리 무엇에 불안한 얼굴의 의미는 여기에 있었던가


모든 유혈은 꿈같이 가고 지금도 나무 하나 안심하고 서 있지 못할 광장. 아직도 정맥은 끊어진 채 휴식인가 야위어가는 이야기뿐인가


언제 한 번은 불고야 말 독사의 혀같이 징그러운 바람이여. 너도 이미 아는 모진 겨우살이를 또 한 번 겪으라는가. 아무런 죄도 없이 피어난 꽃은 시방의 자리에서 얼마를 더 살아야 하는가, 아름다운 길은 이뿐인가


산과 산이 마주 향하고 믿음이 없는 얼굴과 얼굴이 마주 향한 상시 어두움 속에서 꼭 한 번은 천둥 같은 화산이 일어날 것을 알면서 요런 자세로 꽃이 되어야 쓰는가.


- 박봉우, <휴전선>

이 시가 발표된 지 벌써 61년이나 되었지만 이 시는 여전히 유효합니다. 시에서 “언제 한 번은 불고야 말 독사의 혀같이 징그러운 바람”은 물론 전쟁이고 동족상잔입니다. 조미대결의 날카로움이 날로 첨예해지고 있는 오늘, 분단에 대한 박봉우의 탄식과 절규는 우리 가슴에 범상치 않은 연민과 울분을 응축시킵니다.


이로부터 11년이 지난 1967년 신동엽은 <껍데기는 가라>를 발표합니다. <휴전선>이 분단시의 절창이라면 이 시는 통일시의 절창입니다.


껍데기는 가라.
사월도 알맹이만 남고
껍데기는 가라.
껍데기는 가라.


동학년 곰나루의, 그 아우성만 살고
껍데기는 가라.
그리하여, 다시
껍데기는 가라.
이곳에선, 두 가슴과 그 곳까지 내논
아사달과 아사녀가
중립의 초례청 앞에 서서
부끄럼 빛내며
맞절할지니
껍데기는 가라.


한라에서 백두까지
향그러운 흙가슴만 남고
그, 모오든 쇠붙이는 가라.
- 신동엽 <껍데기는 가라>



이 시에서는 ‘껍데기 대 알맹이’, ‘쇠붙이 대 흙가슴’의 대립 구조가 형성되어 있습니다. 당연히 껍데기, 쇠붙이는 부정적인 것이고 알맹이, 흙가슴은 긍정적인 것입니다. 이것은 사대 대 자주, 외세 대 민족, 폭력 대 평화의 대립 의미를 가집니다.


시인은 알맹이와 흙가슴을 가진 아사달과 아사녀가 ‘중립의 초례청’에서 혼인식을 올리는 장면을 형상화함으로써 우리 민족의 통일 순간을 지극히 전통적인 아름다움으로 승화했습니다.


이로부터 다시 21년이 지난 1988년 김남주는 <조국은 하나다>라고 절규합니다. 이 시는 너무도 지당하고 누구나 동의해야만 하는 ‘하나의 조국’을 이제는 고함처럼 외치지 않으면 안 되게 된 현실을 반영합니다.


5,60년대만 해도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자연스럽게 아무 데서나 노래했는데, 박정희가 등장하면서 통일열망은 수그러듭니다. 경제발전과 통일열망이 반비례한다는 법칙 같은 것은 없을 터인데, 무슨 일인지 한국인들은 그 알량한 경제발전으로 인해 실로 많은 민족적 가치들을 경시하게 되었습니다.


“조국은 하나다”
이것이 나의 슬로건이다
꿈속에서가 아니라 이제는 생시에
남 모르게가 아니라 이제는 공공연하게
“조국은 하나다”


권력의 눈앞에서
양키 점령군의 총구 앞에서
자본가 개들의 이빨 앞에서
“조국은 하나다”
이것이 나의 슬로건이다
나는 이제 쓰리라
사람들이 오가는 모든 길 위에
조국은 하나다라고


오르막길 위에도 내리막길 위에도 쓰리라
사나운 파도의 뱃길 위에도 쓰고
바위로 험한 산길 위에도 쓰리라
밤길 위에도 쓰고 새벽길 위에도 쓰고
끊어진 남과 북의 철길 위에도 쓰리라
조국은 하나다라고(후략)



요즘 반미를 말하면 시대착오적이라고 하는 언론이 있습니다. 조중동도 그렇지만 심지어 ‘한겨레’라는 이름을 가진 신문도 이런 말을 부끄러운 줄 모르고 합니다. 한국은 참 이상한 나라가 되고 말았습니다.


이 이면에는 수많은 운동가, 예술가, 지식인들의 숱한 변절과 배신의 계절이 시간 배경으로 작용했습니다.


아마도 통일이 된다면 통일을 예찬하는 시가 지금까지의 시보다 단기간에 엄청나게 많이 쏟아져나올 것입니다. 통일이 되고 나서 통일을 예찬하는 시인은 기회주의자입니다. 거기에도 자격이 있습니다. 박봉우와 신동엽과 김남주 같은 시인들만이 훗날 통일을 예찬해도 무방할 것입니다.


식민지시대 절창의 시 3편 - 이용악, 심훈, 이육사



우리 시인들이 식민지 시대에 대처한 유형은 세 가지입니다. 굴복과 도피와 저항입니다. 서정주, 유치환 등은 친일시를 썼고 박목월, 박두진 등은 자연으로 도피하는 시를 남겼습니다. 이런 가운데 삼엄한 감시와 검열 속에서도 일제에 저항하면서 조국의 광복을 희구하는 시를 쓴다는 것은 우리의 생각 이상으로 어려운 일입니다.


우리 문학사에는 수치스러운 친일시도 있지만 우리에게 자긍심을 주는 저항시도 적지 않습니다. 이 글에서는 식민지 시대에 저항한 빼어난 절창의 시 세 편을 소개하겠습니다.


먼저 이용악의 <풀벌레 소리 가득 차 있었다>입니다. 이 시는 두만강 너머 연해주로 망명한 한 우국지사의 쓸쓸하면서도 장엄한 죽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집도 아니고
일가집도 아닌 집
고향은 더욱 아닌 곳에서
아버지의 침상 없는 최후 최후의 밤은
풀벌레 소리 가득 차 있었다


노령을 다니면서까지
애써 자래운 아들과 딸에게
한마디 남겨 두는 말도 없었고
아무을만의 파선도
설룽한 니코리스크의 밤도 완전히 잊으셨다
목침을 반듯이 벤 채


다시 뜨시잖는 두 눈에
피지 못한 꿈의 꽃봉오리가 갈앉고
얼음장에 누우신 듯 손발은 식어갈 뿐
입술은 심장의 영원한 정지를 가리켰다
때늦은 의원이 아무 말없이 돌아간 뒤
이웃 늙은이 손으로


눈빛 미명은 고요히
낯을 덮었다
우리는 머리맡에 엎디어
있는 대로의 울음을 다아 울었고
아버지의 침상 없는 최후 최후의 밤은
풀벌레 소리 가득 차 있었다



이용악(1914 ~ 1971)은 함경도 경성 출신인데 8.15 직후 서울에서 체포, 투옥되어 서대문 형무소에 있다가 6.25 때 인민군에 의해 풀려난 후 월북하여 북에서 활동하다가 1971년 운명했습니다.


소설 <상록수>로 유명한 시인 심훈(1901 ~ 1936)은 본격적인 독립운동가였습니다. 그는 상해 임정에 가담했고 이후 국내에 들어와 언론과 영화 활동을 했습니다.


그의 대표시 <그날이 오면>은 너무도 선명하고 강렬해서 우리의 피를 끓게 하는 저항시의 백미입니다.


그 날이 오면 그 날이 오면은
삼각산이 일어나 더덩실 춤이라도 추고
한강 물이 뒤집혀 용솟음 칠 그 날이
이 목숨이 끊기기 전에 와 주기만 할 양이면
나는 밤하늘에 나는 까마귀와 같이
종로의 인경(人定)을 머리로 들이받아 울리오리다.


두개골은 깨어져 산산조각이 나도
기뻐서 죽사오매 오히려 무슨 한이 남으오리까.
그 날이 와서 오오 그 날이 와서
육조(六曹) 앞 넓은 길을 울며 뛰며 뒹굴어도
그래도 넘치는 기쁨에 가슴이 미어질 듯하거든
드는 칼로 이 몸의 가죽이라도 벗겨서
커다란 북을 만들어 들쳐 매고는
여러분의 행렬에 앞장을 서오리다.


우렁찬 그 소리를 한 번이라도 듣기만 하면
그 자리에 거꾸러져도 눈을 감겠소이다.



이 시는 세계적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참고로 하버드 대학의 바우라 교수는 전 세계의 저항시 중에서 조선인 심훈의 <그날이 오면>을 최고작으로 꼽았다고 하는데 저도 여기에 기꺼이 동의합니다.


이육사(1904 ~ 1944)는 의열단 단원이었고 중국 남경에 있었던 조선정치군사학교의 1기생입니다. 지난번에 소개한 <꽃>과 <광야> 외에도 <교목>, <절정>, <노정기> 등은 대단히 높은 수준을 달성한 저항시들입니다.


심훈의 <그날이 오면>이 가장 강렬한 저항시라면 육사의 <청포도>는 가장 아름답고 완벽한 저항시라고 생각합니다.


내 고장 칠월은
청포도가 익어 가는 시절.
이 마을 전설이 주저리주저리 열리고
먼 데 하늘이 꿈꾸며 알알이 들어와 박혀
하늘 밑 푸른 바다가 가슴을 열고
흰 돛 단 배가 곱게 밀려서 오면
내가 바라는 손님은 고달픈 몸으로
청포(淸泡)를 입고 찾아 온다고 했으니,


내 그를 맞아 이 포도를 따 먹으면
두 손은 함뿍 적셔도 좋으련.
아이야, 우리 식탁엔 은쟁반에
하이얀 모시 수건을 마련해 두렴.



육사는 1927년 국내 체류 중 조선은행 대구지점 폭파사건에 연루되어 대구형무소에서 3년간 옥고를 치렀습니다. 출옥 후 다시 베이징대학에 입학했고 수학 중에도 독립운동을 계속했습니다.


육사는 사회주의자였습니다. 동시에 그는 법고창신을 구현한 조선적인 시인이었습니다. 그는 1943년 중국에서 일시 귀국, 동대문경찰서 형사에게 체포되어 베이징으로 압송, 이듬해 베이징 감옥에서 고문을 받다가 죽었습니다.

안타깝게도 8.15를 불과 1년 앞두고 세상을 뜬 것입니다.


# 광화문학교 첫 강좌 ‘이육사와 김남주’
8월 25일(금) 7시 30분. ‘문화공간 온’에서 열립니다.
여러분의 참여를 환영합니다.

/진실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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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7/08/25 [14:19]  최종편집: ⓒ 폭로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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