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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는 ‘5.16’을 왜 ‘쿠데타’로 썼을까
박근혜 캠프, “5.16은 혁명” 주장했다가 되레 ‘쿠데타’ 공박 빌미
 
정운현기자 기사입력  2012/07/14 [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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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권에 때 아닌 ‘5.16’ 논쟁이 일고 있다. 발언의 진원지는 아이러니하게도 야당이 아니라 새누리당이다. 또 이를 입에 담는 사람들은 지난 10일 대선출마를 선언한 박근혜 의원 대선캠프의 ‘얼굴마담’격인 중진들이다. 박근혜 의원의 ‘네거티브 아이템’ 가운데 하나인 ‘5.16’을 이들이 먼저 거론하고 나선 이유가 뭔지를 추측하기란 그리 어렵지 않다. 기왕 맞을 매라면 미리 맞자는 속셈이 아닐까 싶다. 

‘5.16’이 ‘군사쿠데타’냐, 아니면 ‘군사혁명’이냐는 논란은 이 시점에서는 역사논쟁 차원을 넘는 문제다. 왜냐하면 박정희 정권에 대한 역사적 정통성 문제와 깊은 관련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이 문제는 부친의 후광을 입고 정치인으로 급성장한 박근혜 의원의 정체성과도 무관치 않다. 박 의원이 새누리당 대선 후보로 선출될 경우 선거 과정에서 논쟁거리가 될 가능성이 없지 않다. 박근혜 캠프는 최근 네거티브 대책팀을 꾸린 것으로 알려졌는데 ‘5.16’ 건은 아마 여기가 진원지인 듯싶다. 

일반적으로 ‘쿠데타’란 ‘비합법적인 무력 또는 군사적인 수단으로 정권(政權)을 빼앗는 것’을 말한다. 반면 ‘혁명’이란 ‘역사발전에 따라 기존 사회체제를 변혁하기 위해 이제까지 국가권력을 장악하였던 계층에 대신하여 피지배 계층이 비합법적인 방법으로 권력을 탈취하는 권력교체의 형식’을 말한다. 흔히 ‘혁명’이 아래로부터의 개혁이라면, ‘쿠데타’는 상부계층 내에서의 권력투쟁인 것이 보통이다. (<네이버 백과사전> 참조) 

▲ 5.16 당일 한강다리를 건너 시청앞에 집결한 박정희(가운데) 등 쿠데타군들


1961년 5월 16일 새벽, 당시 제2군사령부 부사령관으로 있던 박정희 소장은 수도권의 해병대와 공수단 등 무장한 3,500여 명의 병력을 이끌고 한강 다리를 건너 서울시내로 진입하였다. 별다른 저항 없이 서울시내에 무혈 입성한 박정희 일파는 주요 공공기관과 방송국 등 기간시설을 장악한 후 이른바 ‘혁명공약’ 6개항을 발표했다. 그 내용을 보면,  

반공을 국시의 제일로 삼고 반공태세를 재정비 강화할 것
미국을 위시한 자유우방과의 유대를 공고히 할 것
모든 부패와 구악을 일소하고 청렴한 기풍을 진작시킬 것
민생고를 시급히 해결하고 국가자주경제의 재건에 총력을 경주할 것
국토통일을 위하여 공산주의와 대결할 수 있는 실력을 배양할 것
⑥ 양심적인 정치인에게 정권을 이양하고 군은 본연의 임무로 복귀한다
 

‘5.16’으로 권력을 찬탈한 이른바 ‘주체’들은 자신들의 행위를 ‘혁명’, 혹은 ‘군사혁명’이라고 불렀다. 그래서 이들은 과도기 권력기구의 이름을 ‘군사혁명위원회’(나중에 ‘국가재건최고회의’로 개칭함)라고 이름 붙였다. 군정(軍政) 초기 이들은 혁명검찰부와 혁명재판소를 통해 반혁명 분자들을 척결했다. 또 구태정치 일소와 사회정화를 표방하고 ‘특수범죄(반혁명, 반국가행위)처벌법’, ‘정치활동정화법’ 등의 특별법을 만들어 구정치인들과 군부 내 반대파들을 제거하면서 정치적 입지를 확고히 다졌다.  

박정희 정권이 끝난 후 한동안 ‘5.16’은 ‘군사정변’으로 불렸다. 요즘 일반인들이 즐겨 찾는 네이버 백과사전이나 위키백과에서도 ‘5.16군사정변’으로 쓰고 있을 정도로 이 용어는 지금도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있다. 그 이유는 ‘쿠데타’와 ‘혁명’이라는 논쟁을 피해 가치 중립적인 형태로 사용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그러나 ‘군사정변’의 ‘정변(政變)’은 그 자체로 ‘쿠데타’의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른바 ‘3일 천하’로 끝난 김옥균 일파의 ‘갑신정변’이 바로 그 좋은 예라고 할 수 있다. ‘갑신정변’이란 1882년 갑신년에 김옥균 등 개화파 일당이 수구파를 몰아내고 권력을 잡으려다 실패한 사건을 말한다. 당시 조정 내 권력 상층부 인사들 간의 권력투쟁으로 발생한 갑신정변이야말로 ‘쿠데타의 전형’이라고 할 수 있다. ‘5.16’ 역시 권력집단이랄 수 있는 군부의 장군들이 군대를 동원해 권력 찬탈을 기도한 것이니 두말할 필요도 없이 ‘쿠데타’인 것이다. 이는 역사적으로 이미 평가가 내려진 사안이다.  

그런데 왜 지금에 와서 ‘박근혜 캠프’에서 ‘5.16’을 ‘쿠데타’가 아니라 ‘혁명’이라고 주장하고 나온 것일까? 앞에서 약술한 대로 올 대선을 의식한 박근혜 캠프의 ‘네거티브 대응전략’인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고 치더라도 문제는 이같은 망발이 역사왜곡으로 나타나고 있다는 점이다. 일본의 역사왜곡에 대해서는 입에 거품을 물던 사람들이 우리 내부의 역사왜곡에 대해서는 정치적 이유로 침묵하는 건 옳지 않다. 몇몇 사람을 제외하고는 보수진영에서는 거의 입을 다물고 있는 이는 양식 있는 태도는 아니라고 하겠다.  

▲ 이상돈 교수
박근혜 의원의 대선 출마를 코앞에 둔 시점에 박근혜 캠프에서 ‘5.16’을 들고 나선 것은 다분히 정치적 의도가 깔린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들 가운데서 총대를 메고 가장 먼저 포문을 연 사람은 새누리당 비대위원 출신으로 현재 박 캠프에서 정치발전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이상돈 중앙대 교수다. 이 교수는 지난 6일 <엠비엔>(MBN) 인터뷰에서 ‘5·16 쿠데타에 대한 박근혜 전 위원장의 입장 변화는 없느냐’는 질문을 받고서 “당시로써 볼 때는 군사혁명인 것은 맞다”며 “그 후에 역사 발전에서 볼 때는 단순한 쿠데타라고 폄하할 수는 없지 않으냐”고 말했다.  

이 교수는 5.16을 일단 ‘군사혁명’이라고 언급했다. 그러나 그는 5.16을 두고 ‘쿠데타’라는 주장을 정면으로 부인하기는 어려웠던지 “그 후에 역사 발전에서 볼 때는 단순한 쿠데타라고 폄하할 수는 없지 않으냐”고 덧붙였다. 이는 이 교수가 5.16에 대한 평가에서 나름의 확신을 갖고 있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이 교수는 보수인사로 분류되면서도 간간이 보수진영에 대해 ‘쓴소리’도 서슴지 않았다. 그런 그가 새누리당 비대위원을 거쳐 다시 박 캠프에서 정치발전 위원을 맡은 것을 두고 ‘박근혜 이미지용’이라는 말이 나오기도 한다. 

박근혜 캠프에는 정치발전 위원이 두 명 있는데 다른 한 사람은 박효종 서울대 국민윤리학과 교수다. 박 교수는 뉴라이트 계열의 ‘교과서포럼’ 공동대표를 맡았던 인물로, 교과서포럼에서 펴낸 역사교과서에서는 5.16을 ‘혁명’이라고 표현했다. 이 교수에 이어 박 교수도 5.16에 대해 발언한 바 있는데 이 교수보다 더 엉거주춤한 자세를 보이고 있다. 참고로 박 교수는 가톨릭대 신학과 출신으로 엄밀히 말해 역사학자라고 보기 어렵다. 7월 9일 저녁 박 교수가 CBS 라디오 ‘시사자키 정관용입니다’에 출연해 발언한 내용 중 한 대목을 소개하면,  

▶정관용> 박 교수님은 5.16을 쿠데타라고 보세요, 혁명이라고 보세요?
▷박효종> 그래서 저는 그 문제에 대해서는 이것은 쿠데타이기도 하고 혁명이기도 하다. 두 개가 다 맞다. 이 두 가지를 다 같이 가지고 있다고 저는 보거든요. 


▶정관용> 그래요?
▷박효종> 예, 그러니까 이제 5.16이 일어난 것은 그것은 이제 쿠데타이지요. 5.16 자체는 이제 쿠데타인데, 그러나 그것을 통해서 나타난 우리 사회의 이 변화, 그것은 과히 혁명적 변화라고 할 수 있거든요. 사실 그래서 뭐 우리 경제적인 차원도 다 넘어서서 우리가, 우리도 할 수 있다, 이런 어떤 자신감의 발로. 그래서 사실은 혁명적인 열정이 5.16을 계기로 해서 우리 사회에 크게 이제 아주 욱일승천의 기세로 올라가지 않았느냐. 그래서 사실은 이제 그 5.16에도 다 빛과 그림자가 있는 것이지요. 


박 교수 역시 “5.16 자체는 쿠데타”라며 ‘쿠데타’에 방점을 찍고 있다. 그러나 박 교수의 말은 개운치 않다. 토를 달고 있기 때문이다. 쿠데타인 5.16을 계기로 우리사회가 ‘혁명적인 변화’를 가져왔으니 ‘쿠데타이자 혁명이기도 하다’는, 이것도 저것도 맞다는 식의 입장을 펴고 있는 것이다. 이는 뚜렷한 자기 역사관이 없는 상태에서 시류에 편승한 기회주의적 행태가 아닌가 싶다. 박 교수는 이틀 뒤인 11일 MBN에 출연해 “5·16은 쿠데타이면서 혁명”이라며 “5·16 자체야 쿠데타이지만 그걸로 이뤄진 변화는 가히 혁명적 변화”라고 거듭 밝힌 바 있다. 

박근혜 캠프의 얼굴마담 격인 정치발전 위원에 이어 캠프의 거물인사도 마침내 5.16 논쟁에 본격 뛰어 들었다. 박 교수가 MBN에 출연한 이날(11일), 박근혜 캠프의 좌장격인 홍사덕 공동선대위원장은 기자들과 만나 5·16과 관련한 질문에 대해 “태조 이성계의 조선 건국을 포은(정몽주)에게 물으면 역성혁명이라고 하겠지만 (손자인) 세종대왕에게 물으면 그렇게 말하지 않을 것”이라며 “박 전 위원장도 세종대왕과 같은 입장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예를 들기 위해서라지만 박근혜를 세종대왕에 견준 홍 위원장의 발상이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박근혜 의원은 지난 2007년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에 출마 당시 후보검증 청문회에서 “5·16은 구국 혁명이었다”고 말한 바 있다. 이를 기억하고 있는 기자들이 홍 위원장에게 ‘(5·16이) 구국의 혁명이라는 기존 입장에서 변화가 없는 것이냐’며 박 의원의 현재 입장을 묻자 그는 “다르지 않을 것 같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홍 위원장은 “선조(박정희 전 대통령)를 비난하면서까지 대통령이 되어야 한다고 (박 의원에게) 조언할 생각이 없다”고 덧붙였다. 보기 나름으로는 이제 이런 문제는 밟고 넘어가도 좋을 만큼 대선에 자신이 있다는 말로도 들린다. 

이상돈-박효종-홍사덕으로 이어진 ‘5.16 공격수’들이 꼭 골을 넣으리라는 법은 없다. 안팎에 ‘수비수’가 너무도 많기 때문이다. 먼저 집안에서 터져 나온 비판부터 살펴보자. 이상돈 교수의 발언 이틀 뒤인 8일, ‘친이’ 직계인 조해진 새누리당 의원은 자신의 트위터에 “5.16 자체는 합헌정부를 총칼로 무너뜨린 쿠데타”라며 “그 뒤에 이루어진 산업화, 근대화가 혁명인 것이다. 이상돈 위원이 방송에서 한 말은 틀렸다”며 이 교수를 비난했다. 조 의원의 분리론은 오히려 설득력을 가질 수도 있다고 본다. 다만 그 전체는 5.16 자체는 쿠데타라는 것이다.  

집밖, 즉 야권에서는 ‘비난 폭탄’을 퍼부었다. 제일 먼저 포문을 연 사람은 이해찬 민주통합당 대표였다. 이 대표는 이상돈 교수의 발언 다음날(7일) 구미 금오산호텔 컨벤션에서 열린 경북도당 출범식에 참석해 “5.16을 군사혁명이라고 하는 주장은 박정희(대통령 시절) 때나 하던 얘기”라고 전제하고는 “5.16은 군사쿠데타지, 혁명이라고 하지 않았다. 그래서 헌법 전문에도 5.16을 포함시키지 않은 것”이라고 강조했다. 실지로 헌법 전문에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3.1만세의거(3.1운동), 4.19혁명 등은 언급돼 있지만 5.16은 포함돼 있지 않다.  

▲ 문재인 민주당 고문
대선 출마를 선언한 문재인 당 상임고문도 이 논쟁에 가담했다. 문 고문은 9일 오전 MBC 라디오 <손석희의 시선집중> 출연해 “우리 헌법은 4.19 민주이념을 계승한다고 천명하고 있는데 아직도 5.16이 군사혁명이라고 하는 것은 위헌적이고 반헌법적인 주장”이라며 “비록 아버지의 일이었지만 박 전 대표가 산업화의 공로와는 별도로 헌정을 파괴하고 민주주의와 인권을 유린했던 것에 대해 잘못된 것이었다는 올바른 역사의식을 가져준다면 우리나라 정치가 크게 발전할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은근히 박근혜 의원을 꼬집었다. 

강도가 센 것은 역시 당의 대변인이었다. 박용진 민주통합당 대변인은 12일 정두언 의원 체포동의안 부결 관련 브리핑에서 “박(근혜) 의원의 진정한 문제는 5.16 쿠데타에 대한 그의 잘못된 태도”라며 “박 의원이 2007년 ‘5.16 쿠데타는 구국의 혁명’이라고 이야기한 것은 조상 비판이 아닌 역사왜곡 찬양”이라고 비판했다. 박 대변인은 이날 YS의 ‘칠푼이’ 발언을 인용해 “5.16 쿠데타에 대해 왜곡된 태도를 유지하고 역사적 평가를 뒤집으려 한다면 ‘칠푼이’라는 YS의 일갈이 맞다고 맞장구를 칠 수밖에 없다”고 공세 수위를 높였다. 

쿠데타와 혁명은 ‘결과’가 아니라 ‘동기’와 ‘출발점’을 평가하는 가치관이라고 할 수 있다. ‘5.16’을 놓고 혁명이냐, 쿠데타냐는 논란을 벌이는 것은 그 첫 단추를 제대로 끼우지 못한 데서 기인한 것이다. 5.16은 실패냐 성공이냐에 관계없이 그 성격 자체로 ‘쿠데타’이며, 반면 4.19는 실패냐 성공이냐에 관계없이 그 성격상 ‘혁명’인 것이다. 따라서 박효종 등이 “5.16은 혁명”이라거나 “5.16은 쿠데타이자 혁명” 운운한 것은 무식의 소치이거나 아니면 기회주의자의 궤변이라고 밖에 볼 수 없다.

박정희 일파는 ‘부패와 구악 일소’ ‘민생고 해결’ ‘국가자주경제 재건’ 등을 내걸고 ‘혁명’을 일으켰다고 ‘혁명공약’에서 밝혔다. 그리고 공약 마지막 6항에서 ‘양심적인 정치인에게 정권을 이양하고 군은 본연의 임무로 복귀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군정 시절 박정희는 ‘원대복귀’를 촉구하는 ‘혁명동지’들의 요구에 대해 여러 차례 말을 바꿔 ‘번의(翻意) 대통령’이란 별명을 얻었다. 박정희는 또 군정 연장을 위해 아끼던 후배인 최주종 장군에게 ‘역(逆)쿠데타’를 권유하기도 했다. 결과만을 놓고 본다면 이들은 애초부터 민족과 국가를 위하기는커녕 권력에만 눈이 멀었던 게 아닐까? 

‘5.16’ 당일 새벽, 방일영 당시 <조선일보> 사장은 흑석동 자택에서 잠을 자다가 한강다리를 넘던 박정희 일파의 쿠데타군이 쏜 총소리를 듣고 5.16이 터진 것을 알았다고 자신의 자서전 <격랑 60년-방일영과 조선일보>(1999)에 쓴 바 있다. 이 사태에 놀란 방 사장은 황급히 태평로 신문사로 달려갔다. 그는 “‘군사쿠데타’라는 미증유의 사태가 앞으로 전개될 지 가늠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라고 당시 상황을 자서전에 기록했다. 이날 오전 <조선일보>는 ‘5.16’ 소식을 호외로 제작해 배포했다. 그 호외의 제목은 ‘오늘 새벽 군부쿠데타’였다.

▲ '5.16' 당일자 <조선일보> 호외. <조선>은 '5.16'을 '군부쿠데타'라고 썼다.


<조선일보>가 ‘5.16’을 ‘군사쿠데타’라고 쓴 것은 무슨 깊은(?) 뜻이 있어서였을까? 아니면 무슨 ‘정치적 판단’을 한 결과에서일까? 모르긴 해도 아마 그런 건 아닐 것이다. 방 사장도 자신의 자서전에서 ‘군사쿠데타’라고 썼듯이 당시 보통사람이라면 누구나 ‘5.16’을 군인들의 쿠데타로 인식했고, <조선일보>도 그런 점에서 ‘쿠데타’로 썼다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5.16주체’들이 ‘혁명’이라고 쓴 것과 당시 세상의 평가는 달랐다고 봐야할 것이다. 그러고 그런 평가는 지금도 달라진 건 없다. 

대를 잇기 위해서 들인 ‘양자(養子)’는 살아서는 물론 죽고 나서도 양자로 기록된다. 호적에 양자로 한번 입적되면 다시는 바꿀 수 없다. 혹 그 양자가 소문난 효자(孝子)라고 해도 그렇다고 해서 ‘생자(生子)’가 되는 건 아니다. ‘5.16’도 마찬가지다. 그냥 ‘쿠데타’일 뿐이다. 박정희 시대의 경제성장 같은 건 이것과는 별개로 논할 문제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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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2/07/14 [09:06]  최종편집: ⓒ pokro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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