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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FTA와 미국', 그리고 '숭미와 반미'
FTA 대표적 불공정협정,그러나 배은망덕한 나라는 되지 말자
 
폭로닷컴편집국 기사입력  2011/12/07 [1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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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 자주,국익과 한미 동맹

지난 2002년 한일 월드컵 기간중에 여중생 2명이 훈련중인 미군 장갑차에 깔려죽은 사건으로 인해 시민단체가 중심이 된 반미주의가 확산된 이후 한미관계는 악화일로를 걸어왔다.특히 노무현 정부시절 북핵 문제와 관련하여 노무현 대통령이 '동북아 균형자론'을 주창하고 작전권 환수를 추진하면서 한미간 갈등은 더욱 깊어졌다.

이러한 한미간 긴장상황은 이명박 보수정권 집권과 함께 터져나온 쇠고기 촛불시위 열풍이 전국을 휩쓸면서 최고조에 이르렀다.그러던 중 이명박 대통령이 미국 부시정권의 마음에 쏙 드는 '비핵개방 3000'이라는 슬로건식 대북강경정책을 추진하고 부시 및 오바마 대통령과 한미동맹강화를 고리로 종속관계를 자인하는 충성맹약을 되풀이 한결과 최소한 정부 차원에서는 밀월관계를 유지해 왔다.

그러나 대통령 이명박이 지난 2007년 4월2일 노무현정권이 최종 타결한 한미 자유무역협정을 미국의 개정 요구를 받아들여 미국엔 유리한 반면 우리에겐 17가지 불리한 독소조항으로 점철된 매국적 협정을 밀어부쳐 국회 비준안을 강행 처리하는 과정에서 한미관계가 최악의 상황으로 빠져 들었다.

이번 한미 자유무역협정 비준을 계기로 통해 나타난 민족주의가 아니더라도 시대 상황에 부응하는 대등한 한미관계를 재정립하는 것도 중요할 것이다.그러나 과연 우리가 상황이 변했다하여 무조건 배척할 만큼 미국은 우리에게 원수 나라인가? 아니면 우리 나라 독립과 안보 경제 발전에 기여한 은인의 나라인가?

미국의 공과를 냉철히 분석하고 故 김대중 전 대통령의 의견 처럼 한미동맹관계를 잘 관리하는게 지혜롭게 행동하는 것인지 살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한국에서 열혈 애국국민들로부터 몰매 맞는 미국

요즈음 한미 FTA비준 날치기 처리 과정에서 보듯 우리나라에서 미국의 처지는 동맹관계가 아니라 우리의 국익을 송두리째 집어 삼키려는 국제적 날강도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여기서 한방 저기서 한방 사방에서 애국적 열혈 국민들이 퍼붓는 연타에 정신을 못차릴 정도다. 비단 미국이 반미주의의 구호를 앞세운 한국 민중으로부터 공격을 받은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여론의 질타를 받은 것은 비일비재하였고 한국내 미국시설이 점거당하거나 화염병 공격을 받은 것도 한두 번이 아니다.

미국에 대한 한국내 여론이 급격히 악화되고 반미주의로 발전하게 된 계기는 아무래도 1980년 신군부에 의한 광주학살이 계기가 되지 않았나 싶다. 민주화 세력들에게 신군부를 지원하고 있다는 의혹을 받고 있던 차에 광주 민주항쟁을 진압하기 위해 동원된 병력 출동을 미국이 사전 승인하였다는 사실은 반미주의에 불을 질렀다.

유신반대 투쟁이 극심하던 70년대에만 하더라도 미국은 혈맹의 나라라는 인식이 국민들 사이에 폭넓게 자리잡고 있었던 관계로 노골적인 반미 구호가 등장하지도 않았고 직접적인 반미투쟁이나 공격은 더더욱 없었다. 미국에 대한 한국민의 의식이 우호적인 수준을 유지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던 것이 광주민주항쟁 진압군 출동 승인과 전두환 정권에 대한 지원으로 여론이 급속하게 악화된 것이다. 80년대는 미국으로서는 생각하기도 싫은 수난의 시대였다. 하루도 반미 구호가 그칠 날이 없었고 미국 시설 주변은 단골 시위 장소였으며 각종 시설은 공격의 대상이었다.

부산 소재 미 문화원이 점거 방화되는 바람에 여러 명이 목숨을 잃었고 광주에 있었던 미 문화원은 수차례 공격을 받고 점거를 되풀이한 끝에 폐쇄되고 말았다. 서울 미 대사관과 문화원도 수난을 당했다.

그러나 80년대 반미운동은 독재를 타도하고 민주주의를 회복하려는 민주화투쟁과 맞물린 데다 광주학살에 대한 책임론에서 자유롭지 못한 미국의 입장 때문에 한미간 갈등으로 비화되지는 않았다. 미국 의회의 반응이나 여론도 반미 구호의 등장이나 움직임을 한국이 민주국가로 나아가는 과정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로 이해하는 분위기가 지배적이어서 우려하는 수준은 아니었다.

그러나 요즈음 불붙고있는 반미운동이나 한국 내의 반미주의 확산에 대한 미국의 반응도 80년대와 비교하여 확연히 다르다. 우선 반미운동 형태가 80년에 성행했던 민주화투쟁처럼 정치적인 문제와 상관이 없는 국가 자주권, 인권, 배상권, 생존권과 관련되어 있다는 점이다.

우선 표면화되고 있는 것이 국가 자주권과 관련된 한미주둔군 지위협정(sofa)과 관련된 갈등이다. 최초 1951년에 체결된 sofa는 대표적인 불평등 협정이었다. 당시는 6.25 전쟁 중이어서 대규모 군대를 파병한 미국이 자국의 입장을 일방적으로 고려한 협정안을 내놓았더라도 도움을 받는 약자의 위치에 있었던 우리나라로서는 수용할 수 밖에 없었다.

국가간 외교관계가 대등관계를 바탕으로 이루어지는 것을 고려할 때 우리에게 불리하게 맺어진 sofa는 우리나라의 자주권 훼손은 물론 미군과 관련된 문제 발생시 우리 국민의 인권이 침해받을 소지가 다분하였던 것이다. 이러한 우려는 미군에 의해 범죄가 급증하고 노동, 환경, 검역, 재산권 관련 문제들이 제기되면서 현실화되었다.

미국도 시대의 변화와 한국의 시민단체, 정부의 요구에 따라 개정 필요성을 느끼고 1991년과 1995년 두 차례 개정협상에 임해 상호주의 원칙에 따라 일부 내용을 개정하였다. 그러나 2000년 4월 매카시 미군상병이 이태원에 있는 술집 여종업원을 살해한 사건을 저질렀는데도 유죄확정 판결이 날 때까지 신병을 인도받지 못하게 되어 있는 SOFA조항이 문제되어 미국이 유럽국가들과 맺은 협정수준으로 개정해야 된다는 여론이 빗발치게 되었고 급기야 시민단체가 나서게 된 것이다.

다음 문제가 된 것이 6.25전쟁 당시 충북 영동군 노근리 주민 400여명이 미군에 의해 학살당한 사건에 대한 진상 규명과 피해 보상문제다. 미군에 의한 노근리 양민학살 사건은 AP통신이 1999년 특종 보도하면서 세상에 알려졌다. 미국 조야는 미군이 양민을 대량 학살하였다는 보도에 발칵 뒤집혔다.

클린턴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진상규명 조사를 명했고 한미 합동 조사단이 구성되어 수 차례 노근리 현지를 답사하는 등 세계적인 관심사건으로 부각되었다. 노근리 학살 사건이 세상에 알려진 것이 기폭제가 되어 노근리 사건과 유사한 사건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자 미국은 매우 곤혹스러운 처지에 빠졌다.

미국측의 발 빠른 대응에도 불구하고 노근리 문제는 아직까지 별다른 진전이 없다. 오히려 미 국방부가 미군이 노근리에서 양민을 학살했다는 보도는 사실이 아니라고 이의를 제기하면서 진상규명이 벽에 봉착한 상태다.

그후 또 다른 쟁점으로 떠오른 것은 경기도 화성군 매향리에 위치하고 있는 미공군 전용 쿠니 사격장 문제다. 쿠니 사격장은 1951년 한·미 상호 방위조약에 따라 매향리 앞 해상에 위치하고 있는 농섬에 설치된 이후 1968년 매향리 일대 바닷가 80만평에 추가로 기총 사격장을 신설하여 육상과 해상 총 728만평에 달하는 면적을 사용하는 동북아 최대 규모의 미공군 전용 사격장이다.

쿠니 사격장에서는 주말을 제외하고 매일 미군 전투기와 폭격기들이 기총 소사와 폭탄투하 훈련을 실시한다. 무려 50년 동안 폭격과 사격훈련을 실시하다보니 사격장 주변 매향리를 비롯한 9개 마을 720여 가구 주민들은 비행기 소음, 폭격음, 불발탄 폭발사고 등으로 많은 피해를 보았다고 한다.

인도주의 실천의사회 소속 의사들이 매향리 주민들을 상대로 건강진단을 실시한 결과 상당수의 주민들이 납중독 증상을 보였며 난청 환자가 급증하는 등 주민건강 상태가 심각한 수준이라고 발표하였다. 매향리 주민 피해에 대해서 국방부와 미국측이 주민 이주 등 피해보상 문제를 전향적으로 검토하고 사격장 폐쇄를 약속하여 일단락된 것 같지만 아직도 매향리 사격장 문제는 아픈 상처로 남아 있다.

특히 노무현정권과 부시정권간 북핵문제와 대북관계에 대한 입장 차이로 외교 갈등과 한미동맹 문제로까지 비화되기에 이르렀다. 보수주의 물결 속에 네오콘 강경파가 주도하고 있는 부시 행정부의 대북 강경정책과 노무현 정권의 민족공존 차원의 남북관계 발전을 염두에 둔 숭미타파 민족주의적 동북아 균형자론이 충돌하면서 한미관계는 사상 유례가 없을 정도의 긴장 국면으로 빠져들었던 것이다.

당시 한국 정부는 일련의 사태 진전으로 매우 곤혹스러운 입장에 놓이기까지 하였다. 국민의 생존권 및 인권 보호와 남북관계 발전, 대미 우호라는 두 가지 문제를 원만하게 해결해야 하는 노무현 정부로서는 우리측과 미국이 동시에 만족할 수 있는 최선의 방안을 마련하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문제 해결이 늦어질수록 반미, 반한 여론이 확산되고 나아가 한미간의 갈등이 최고조에 달할 수 밖에 없었다.

당사자인 미국의 불만은 대단하였다. 행정부는 물론 의회에서 까지 한국을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반응이 나왔을 정도였다. 미국 일각에서는 이런 꼴 보려고 한국 안보를 위해 주둔할 필요가 있었느냐는 식으로 직접적이고 노골적으로 불만을 터트리는 분위기가 팽배하였다. 그즈음 발표된 한국인 직원1000명 감원, 비축 탄약 철수 발표는 미국의 불만 강도가 예상보다 강하였음을 느낄 수 있게 하는 대목이다.

다행히 일부 보상 문제가 타결되어 잠잠해지는가 하였으나 북핵 문제로 어느 사이 양국관계가 위험 수위에 도달하였다. 매향리 사격장과 노근리 문제가 터졌을 때만 하여도 미국의 불만은 한국 안보를 위해 미국 국민이 희생하고 있는데 그 정도의 문제는 한국 국민들이 감수해야 하지 않느냐는 것이었다.

노근리 양민 학살 문제도 사실 관계가 불분명한 사건인데다 설혹 미군에 의한 양민 학살이 사실이라 하더라도 당시는 전쟁 상황이라는 불가피한 측면을 간과하고 일방적으로 비판만 할 수 있느냐면서 6.25전쟁 당시 양민이나 피난민으로 위장하고 침투한 북한군에게 미군이 피해를 당한 사례도 많다고 하였다.

미국으로서는 한국을 효과적으로 방위하기 위해서는 폭격과 기총사격 훈련을 실시할 수 밖에 없으며 한국 안보를 위해 희생하고 있는 자국 병사들의 사기 문제를 고려해 최대한 신상을 보호해 주어야 하기 때문에 행정협정 SOPA의 대폭적인 개정 문제도 한국정부와 국민이 양해해주길 기대하고 있는데 오히려 사사건건 민감하게 반응하여 몰매를 때리고 있으니 섭섭하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노무현 정권이 들어선 이후 북핵문제와 관련하여 한국 정부의 미온적인 태도, 친중반미 자주적인 동북아 균형자 역할론, 주한미군 주둔비용 이견, 이라크 파병 한국군 감축문제 등 한국 정부의 조치에 민족주의가 가세하면서 반미 열풍이 거세게 일자 미국 정부의 노골적인 불만은 물론 미국 여론도 반한 강경 분위기로 돌변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러한 상황하에서 노무현 정권이 민주정권 재창출에 실패하면서 등장한 이명박 보수정권이 집권하자마자 미국 쇠고기 수입 개방을 선물로 바치면서 미국과의 관계를 개선하려는 숭미종속적 대미외교를 전개하자 민주 진보진영 국민들이 촛불시위로 항거에 나선데 이어 매국적 한미자유무역협정 비준안 강행처리에 나서자 또 다시 애국적 반대 행동에 떨쳐 일어 선 것이다.

국회 비준안이 강행 처리된 이후 무효투쟁으로 전환된만큼 한미자유무역협정으로 재 점화된 한미갈등은 특단의 계기가 없는한 미래진행형으로 지속될 전망이다.이러한 시점에서 우리 국민들도 숭미 타파에만 집착하여 미국측의 이러한 탐욕적 행동을 강대국의 자기 중심적 논리라고 무조건 타도의 대상으로 삼기 보다는 해방 후 오늘날까지 미국의 역할과 대미 관계를 고려해 성숙하고 냉철하게 대처하면서 국익을 극대화하는게 바람직 하다고 본다.

미국과 우리나라


미국과 우리나라가 정식 수교를 맺은 것은 약 120여년 전인 1882년 5월 22일이었다. 우리나라를 대표한 전권대관 신헌과 미국 대표 슈펠트 사이에 한미수호 조약이 서명된 것이다. 한미수호조약이 맺어지기 37년 전인 1845년 미국은 이미 우리나라에 대해 관심을 갖고 있었다는 것이 하원의 해사분과위원회 분과위원장인 프랫의 '일본과 조선에 파견할 통상 사절 연장'이라는 결의안이 제출된 사실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은둔의 나라 조선은 미국을 잘 모르고 있었지만 미국은 이미 우리나라와 통상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프랫의 결의안이 하원에 제출된 10년 후인 1855년, 그리고 1865년 1866년 세 차례에 걸쳐 미국 배가 강원도 통천과 경상도 영일, 평안도 선천군에 표류함으로써 미국과의 최초 접촉이 이루어졌다. 이 때 우리나라는 표류한 미국 배를 청나라로 호송하는 등 친절을 베풀었다.

미국과 문제가 생긴 것은 1866년 7월 미국 상선 제너럴 셔먼호가 대동강을 거슬러 올라와 통상을 요구하면서였다. 당시 대원군에 의해 쇄국 정책이 실시되던 때라 당시 평양 감사였던 박규수는 미국 셔먼호의 통상 요구를 거절하였고 이로 인해 전투가 발생 셔먼호가 불타고 미국인 선원 24명이 살해된 것이다.

미국은 셔먼호 사건을 계기로 무력에 의한 강제 통상을 계획하고 1871년 4월 3일 아시아 함대 사령관 로저스 지휘 하에 호위함 3척 포함 2척 대포 85문 병력 1230명을 동원하여 강화도를 공격, 초지진 덕진진, 광성보를 점령하였다. 미국 함대는 조선 정부가 지구전을 펴면서 교섭에 응하지 않자 5월 15일 철수하였다. 이른바 신미양요였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1882년 수호조약이 맺어진 것이다. 수교 후 미국은 임오군란, 갑신정변, 동학혁명 등으로 한국내 사정이 어수선하고 일본의 영향력이 강화되자 한국에서 주도권을 놓고 일본과 대립하는 것 보다는 한국에 대한 일본의 지배를 인정하는 대신 일본으로 하여금 필리핀에 대한 미국의 지배를 인정하라는 제안을 내놓았다.

미국의 제안이 일본의 이익에도 부합된다고 판단한 일본이 이에 응함으로써 루스벨트는 일본과의 가쓰라-태프트 밀약을 맺게 되었다. 가쓰라-태프트 밀약으로 일본은 한국에 대한 식민지배를 국제사회로부터 인정받았다고 판단 한국 침략을 가속화하였다.

결과적으로 미국은 자국의 이익을 위해 일본의 한국 식민 지배를 권고하고 방조한 것이다. 미국은 일본이 한국을 강점한 뒤에는 한일합병 조약을 정당화 하는 등 제국주의 속성을 버리지 못하였다.

윌슨 미국 대통령의 민족자결주의에 영향 받아 1919년 3.1독립운동이 일어났을 때 미국 언론들은 일본의 행위를 규탄하였다. 미국 의회에서도 논란을 벌였지만 정작 미국 정부는 무관심으로 일관했다. 미국이 한국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해 오던 일본이 하와이 진주만을 기습 공격하여 태평양전쟁을 치르면서였다.

이때부터 미국은 한국독립 운동을 지원하기 시작하였다. 일본 상륙작전을 준비중이던 미국은 소련으로 하여금 한반도로 진격해 줄 것을 요청하였으나 일본이 의외로 쉽게 항복하자 소련의 한반도 전 지역 점령을 우려하여 계획에 없었던 한반도 상륙을 단행하였다.

미국은 한반도에 진주하면서 38도선 이북은 소련이 이남은 미국이 일본군의 항복을 접수한다는 '일반명령 1호'를 발표하였다. 미국의 일반명령 1호는 한반도를 남북으로 분단하는 원인이 되었다. 미국과 소련은 1945년 8월25일 한반도 분단점령을 발표하였고 이후 1945년 9월 8일 하지 중장이 휘하부대를 이끌고 인천으로 상륙하였다. 남한에 진주한 미군은 1948년 8월15일 정부가 수립될 때까지 3년간 군정을 실시하였다.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자 미국은 군사비 삭감에 따른 병력 감축으로 미군을 한반도에서 철수시켰다. 미군이 철수한 다음 해인 1950년 6.25전쟁이 발발하자 미국은 다시 군대를 파병하여 3년 동안 북한군과 북한을 지원한 중공군과 싸워 남한을 구했다. 한국전쟁 후 한국과 미국은 정치, 군사적으로 긴밀한 관계를 맺고 유대를 강화하였다.

한미상호방위 조약을 체결하고 미군을 주둔시켰으며 경제원조를 강화하고 적극적으로 전후복구 사업과 경제부흥 사업을 지원하였다. 6.25전쟁 이후 1961년 초까지 미국의 원조는 한국 경제에 있어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하였다. 미국이 1946년부터 1979년까지 한국에 경제원조로 쏟아 부은 돈은 47억 달러의 무상원조를 포함하여 무려 146억 810만 달러나 되었다.

1962년부터 무상원조가 끊어지고 차관으로 전환되면서 한국 경제도 본격적으로 성장하게 되었고 미국과의 관계도 쌍무적인 무역시대로 발전하였다. 미국은 한국에 있어 대미수출 의존도가 51.7%에 달할 때가 있었을 정도로 최대 무역상대국이었다. 미국의 강력한 통상 압력으로 대미무역적자를 기록한 해도 있었으나 아직도 미국은 우리와는 뗄래야 뗄 수 없는 가장 중요한 우방으로 자리잡은건 사실이다.

독재정권의 후견인 노릇을 하면서도 민주화를 지원하기도 했으며 막후에서 IMF외환 위기를 조장했다는 의혹을 받으면서 외환위기 극복을 위해 발벗고 나선 미국, 애증이 엇갈리는 미국이지만 정치, 경제, 군사, 외교적으로 미국은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나라라는 것이다.

우리나라와 관련된 미국의 공과(功過)

미국을 자국의 이익에만 집착하는 제국주의라고 성토하기 이전에 한미관계의 역사적 사실과 우리나라에 대한 미국의 역할을 냉정하게 분석해볼 필요가 있다고 본다.

과연 미국이란 나라는 자국의 국가이익에 집착하여 약소국을 희생시킨 제국주의 국가인지 아니면 상호주의에 입각하여 대등한 관계를 바탕으로 선린관계를 추구한 우호국가인지 제대로 알 것을 알고 비판을 하든 고마움을 느끼든 하는 게 이성적인 국민으로서의 올바른 자세라고 보기 때문이다.

미국과 우리나라의 역사적 관계에서 보듯 미국이 우리나라의 운명과 관련하여 행사한 부정적인 조치들은 결코 가볍게 넘길 수 없는 사안들이다. 구한말 열강들이 우리나라의 운명을 놓고 각축전을 벌일 때 미국 대통령 루스벨트는 일본과의 가쓰라-태프트 밀약을 통해 호시탐탐 한반도 강점을 노리던 일본에게 조선 강점을 권고하고 정당화시켜 줌으로써 우리 민족에게 씻지 못할 고통을 안겨주는데 일조하였다.

그렇다고 당시 미국의 행위를 비난할 수만은 없다. 당시 국제정세는 미국을 비롯한 일본, 러시아, 영국, 독일, 불란서 등 열강들이 영향력 확대를 위해 경쟁적으로 세계 곳곳에 진출하는 양상이었기 때문이다. 미국, 일본 등 강대국이 약소국을 침략한다는 것은 도덕적으로 비난받아야 마땅하지만 당시 열강들간에는 그러한 행위가 도덕적으로 문제가 된다고 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정작 욕을 먹고 비판을 받아야 할 대상은 그러한 국제정세 속에서 세계 조류를 읽지 못한 채 개혁과 국력 배양 보다는 파벌 싸움과 부정부패로 일관한 나머지 외침을 자초한 당시 우리정부와 조상들일 수도 있다는 점이다.

두번째로 미국의 한반도 분단론이다. 해방과 동시 미국이 일반 명령 1호를 통해 남북을 38도선으로 양분하는 바람에 민족이 분단되는 아픔을 겪게 되었다며 미국의 한반도 분단론을 들고 나오는 사람들이 있다.

미국의 한반도 분단책임론은 일반 명령 1호에서 보듯 어느 정도 설득력을 가지는게 사실이다. 문제는 미국이 사전에 계획된 시나리오에 따라 한반도를 양분시켰느냐는 점이다. 만약 미국이 소련과 함께 한반도를 나누어 가지려는 의도하에 38도선을 그었다면 미국은 한반도 분단에 대한 책임을 면할 수 없다.

그러나 사전 계획된 것이 아니고 전승국으로서 전후 처리를 하는 과정에서 참전국들간 이해 충돌로 분단이 되었다면 미국은 물론 러시아(소련)도 한반도 분단에 책임이 있다. 그렇다손 치더라도 미국과 러시아(소련) 두 나라에 대해 한반도 분단에 대해 책임을 지우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왜냐하면 일본이 항복 당시 한반도에 주둔하고 있던 상당수의 일본군의 무장을 해제시키기 위해 미군이든 소련군이든 진주할 수 밖에 없었던 상황 하에서 한반도에 대한 영향력 확대라는 국가 이익이 대두되자 결국 미국과 소련 두 나라가 분할 점령하면서 분단으로 이어졌는바, 이렇게 되기까지 스스로의 힘으로 독립을 쟁취하지 못한 우리의 책임이 더욱 크기 때문이다.

미군과 소련군이 진주하지 않고 한반도에 남아 있던 일본군을 일본으로 철수시켜 무장 해제하고 한반도는 민족세력을 중심으로 한민족 스스로 일어서도록 하였다면 한반도 분단은 없었을 것이라는 주장과 일본이 항복하여 일본 상륙작전이 필요없게 되었다 하더래도 미국의 사전 구상에 따라 미군은 일본으로 진주하고 소련군이 한반도 전역을 점령하였다면 공산주의 체제로 정부가 수립되긴 하였겠지만 분단은 없었을 것 아니냐는 의견이 없진 않으나 이러한 주장은 제구실 못한 약자가 내뱉는 남의탓식 부질없는 넋두리에 불과하다.

셋째 미군정이 민족주의 세력을 말살하고 친일 세력들을 중용함으로 민족정기 확립이 무산되었다는 점이다. 하지 중장의 미군정 세력은 군정이 종료된 후에도 미국의 영향력이 계속 유지될 수 있도록 미국의 국가 이익에 부합하는 친미성향의 정부를 구성하는데 심혈을 기울였다.

미국은 군정청을 설치하고 군정업무를 개시하자마자 건국 주도세력 선별에 들어갔다. 미국은 건국을 주도할 세력으로 김구 중심의 임정 세력과 이승만을 중심으로한 친일기회주의 세력, 여운형 중심의 건준세력, 김성수, 송진우 등 자본가 세력을 검토 대상에 올려 놓고 면밀한 분석 작업을 벌였다.

미국의 최우선 고려대상은 미국의 이익에 반하지 않는 친미성향이어야 한다는 점이었다. 그러한 관점에서 볼 때 외세를 배격하고 자주성과 민족주의 성향이 강한 김구의 임정세력은 최우선 배제 대상이었다.

한때 협력대상자로 거론되었던 온건 사회주의자 여운형도 건준의 실체가 자유민주 체제와 상반된 친 공산주의로 드러남에 따라 배제되었고 세력기반이 약하고 친일 매판 자본가라는 비판을 받고 있던 김성수, 송진우 계열도 군정 협력 이상의 관계로 발전할 수 없었다.

자연스럽게 미국의 관심은 이승만과 친일 기회주의 세력에게 쏠렸다. 이승만도 귀국후 얼마동안은 민족주의 성향의 독립운동가, 독단적인 성격 때문에 미국의 호감을 얻지 못했지만 국내 지지기반이 없던 상태에서 친일기회주의자들을 규합하여 대규모 세력을 형성하자 미국의 태도가 달라졌다.

미국은 이승만이 민족주의자라고 하지만 권력욕이 강하고 미국에서 수십년간 생활하여 미국에 대한 이해도가 높을 뿐만 아니라 최소한 반미성향은 보이지 않을 것이라는 판단을 하게 된 것이다. 이승만의 권력욕, 미국의 국익이 서로를 원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이승만의 권력욕과 미국의 국가이익 충족이라는 현실적 요구가 민족주의 세력을 배제하고 친일 기회주의자들을 건국 주도세력으로 끌어들임으로써 민족 정기를 확립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무산시켰다.

이승만과 미국에 의해 건국주도 세력으로 변신한 친일분자와 기회주의자들은 대한민국의 지배세력으로 등장, 50년동안 모든 기회를 독식하고 부정부패를 만연시켜 나라를 IMF국난 상황으로 몰아 넣고 말았다.

이외에도 미국은 군사독재 정권을 지원함으로써 민주화를 지연시켰고 자유분방하고 무질서한 서구풍조 유입 통로 역할을 하는 등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이러한 부정적인 측면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미국을 멀리하거나 적대시 할 수 없는 것은 미국이 우리 현대사에 끼친 영향이 너무 크기 때문이다.

1882년 한미수호 조약이 체결된 이후 열강의 이해관계 때문에 미국 정부가 우리나라를 일본의 속국으로 전락시키는데 부정적인 역할을 하였지만 민간 분야에서는 우리나라 근대화 지원 활동이 활발하게 전개되었다.

선교의사 앨런이 1885년 한국 최초의 근대식 병원인 광혜원을 개원하였다. 광혜원은 다시 이름을 제중원으로 바꾸고 세브란스의 모태가 된 의학교를 설립 의학도를 교육시켰다. 아펜젤러는 신학교를 개설하여 신교육을 시작하였다. 아펜젤러가 개설한 학교에 고종 임금은 배재학당이라는 교명을 하사하기도 하였다.

이어 1886년에는 언더우드가 경신학교를 창설하였다. 경신학교는 1915년에 연희대학교의 전신인 대학부를 개설하여 이땅에 본격적인 대학교육의 장을 열었다. 여선교사 스크랜턴도 1886년 학생 1명으로 이화여자대학교의 모태가 된 학교를 여는 등 많은 선교사들이 기독교 계통의 학교를 많이 설립하였다.

교육사업 이외에도 1887년 미국의 전기기사 매케이가 중기발전기 2대를 들여와 경복궁 안에 설치하여 에디슨 전등 2개를 가설하는 등 서울시내 전차, 전등, 전화가설 사업이 미국인들에 의해 추진되었다.

일제 식민시대에는 선교를 통학 교육사업 이외에 별다른 활동을 벌이진 않았지만 이승만, 안창호 등 독립 지사들이 미국을 무대로 독립자금을 모금하는 등 활발하게 독립투쟁을 전개하였다. 우리나라가 일본으로부터 독립하게 된 것도 전적으로 미국에 의해서였다. 일본이 태평양 전쟁에서 미국에 패해 항복함으로써 해방이 되었기 때문이다.

일본의 패색이 짙어가는 상황하에서도 친일 매국노들이 전국을 휩쓸면서 징병, 징용을 선동하고, 무기력하게 끌려가던 나약한 민족이 자력으로 독립을 쟁취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중국을 무대로 독립투쟁을 전개하던 독립투사들의 능력에도 한계가 있었다. 그러한 불리한 여건하에서 일본을 항복시킨 미국이 없었다면 우니라나의 독립은 상당기간 늦어졌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따라서 미국이 우리나라가 독립을 이루는데 결정적 역할을 하였음을 제대로 인식하고 균형된 시각을 통해 미국을 바로 볼 수 있는 노력을 기울이는것도 필요하다고 본다.

미국은 해방 후 남한에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될 때까지 정치, 경제, 행정, 군사, 사회적으로 국가로서의 기능이 발휘될 수 있도록 각종 지원을 통해 국가의 뼈대를 만들어 주었으며 6.25전쟁이 발발하자 군대를 파병하여 우리를 구원한바 있다.이는 좌우이념,민족주의 논란과 상관없이 부인할 수 없는 역사적 사실이다.

미국은 6.25전쟁에서 3만6940명이 전사하고 13만여명이 부상을 당하는 등 막대한 인명피해와 천문학적인 전쟁비용을 쏟아 부었다. 휴전 후에도 전후 복구사업과 경제부흥을 돕기 위해 무려 146억 달러가 넘는 원조를 제공하였다. 50∼60년대 우리나라 국민치고 미국이 제공한 분유와 밀가루, 옥수수가루로 만든 빵을 먹어보지 않은 사람이 없을 정도로 미국의 원조는 엄청 났었다.

6.25전쟁이 끝난 1953년 미국은 한국과 한미 상호 방위조약을 맺은 이후 오늘날까지 북한의 군사적 위협으로부터 대한민국을 방어하기 위해 2만8500∼5만명의 미군을 주둔시키고 있다.주한미군의 주둔비용 중 일부를 우리나라가 몇 년 전부터 부담하고는 있으나 미국이 직접 지출하는 비용이 훨씬 많다. 미군은 주둔 비용 등 경제적인 지출 외에도 훈련중 인명사상, 전투기 추락 등으로 장비손실 등 무시할 수 없는 인적, 물적 피해를 감수하면서 한국 안보를 위해 동맹국의 역할을 차질없이 수행하고 있다.

주한미군 주둔은 미국의 국익을 위한 측면이 크지만 우리측으로 볼때 군사 안보적인 기여 외에도 경제적으로도 많은 도움을 준게 사실이다. 미군 시설에 군속으로 많은 사람이 취업하여 생계를 유지하고 있고 미군을 상대로 장사를 하여 큰 돈을 번 사람이 있는 등 주한 미군으로 인한 경제적 효과가 상당하다.

우리나라가 세계 12위의 경제 대국으로 성장하는 데 있어서도 미국이 없었으면 불가능했다. 상당기간 매년 엄청난 무역적자를 감수하면서까지 우리나라에게 최혜국 무역 상대국 지위를 보장해 줌으로써 수출을 통한 경제발전을 가능토록 해 주었다.

우리나라의 부품 소재 산업 성장을 방해하고 부품을 공급하여 완제품을 만들어 수출해 달러를 벌어 들이면 상당액의 달러를 부품값으로 거두어가 천문학적인 무역흑자를 누리는 일본처럼 최소한 미국은 우리나라에게 교활하고 야비한 짓은 하지 않았음을 인정해야 한다.

우리나라 경제 규모가 커지면서 대등한 무역관계를 유지할 필요성이 대두되자 수입개방, 수입 자유화 등 무역 압력이 강화되긴 하였지만 아직도 미국은 우리나라의 최대 무역 상대국의 하나로써 우리나라 경제를 좌지우지 할 정도로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중국경제가 비약적으로 발전하면서 중국이 최대 무역상대국이 되어 미국의 중요성이 예전같지 못하지만 그래도 미국이 우리나라 상품을 사주지 않고 투자금을 회수한다면 우리나라 경제는 치명타를 입게됨은 불을보듯 뻔하다. IMF 금융위기는 우리나라에 대한 미국의 경제적 비중이 어느 정도인지를 웅변으로 증명해주었다. 미국은 우리나라의 경제적 생사 여탈권을 쥐고 있는 나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미국은 또한 우리나라의 민주화와 인권 신장에도 커다란 역할을 하였다. 남북한이 군사적으로 첨예하게 대치하고 있는 특수한 상황 때문에 군사정권과의 관계를 유지하였지만 군사정권에 의한 민주화, 인권 탄압에는 확고한 입장을 견지하였다.

그리고 미국에는 1885년 처음 이민이 실시된 이래 오늘날에는 무려 200여만 명의 재미교포가 거주하고 있을 만큼 우리 국민이 가장 많이 나가 살고 있는 나라이다. 교포들이 많이 살고 있는 캘리포니아, 로스앤젤레스, 뉴욕, 하와이, 시카고 등지에서는 경제적 성공과 높은 교육열을 바탕으로 정치, 사회, 경제적으로 급속하게 영향력을 확대해 나가고 있다.

미국인들의 인간애와 박애정신은 6.25로 인한 전쟁고아와 산업화에 따라 급속히 증가한 미혼모에 의해 출산한 아기들을 대거 입양하여 훌륭하게 키워 주었다. 우리나라 뇌성마비 장애 아동을 세명이나 입양하여 직장을 그만 두고 온갖 정성을 다해 키우는 미국인 부부의 뜨거운 인간애, 한국 입양 아기를 가족들이 모두 나와 공항에서 넘겨받고 엉엉 우는 모습에 우리는 고마움과 부끄러움을 느껴야 한다.

이상에서 살펴 본 바와 같이 미국은 우리에게 있어 때로는 부정적으로 때로는 긍정적인 모습으로 다가왔다. 인간관계나 국가간의 관계에 있어 영원한 친구나 영원한 적은 없다는 말처럼 한미간의 관계도 마찬가지였다고 본다. 불편한 관계도 있었지만 어언 60년 넘게 혈맹 우호관계를 맺어 왔다.

강대국 미국에 비해 약소국인 우리나라가 미국과 대등한 우호관계를 유지할 수 있게 되기까지에는 미국의 역할이 절대적이었다. 우리 현대사가 잘 말해주듯 수혜국 입장에 있는 우리나라가 미국과 우호관계를 유지할 수 밖에 없는 것은 불가피한 선택인 것이다.

미국 탓으로만 돌리는 민족주의와 민족자주

우리 민족의 특성을 나타내는 말 중에 "잘되면 제 탓 못되면 조상 탓"이란 말이 있다. 일이 잘 풀리거나 성공하면 자기의 능력으로 이루어진 것으로 여기지만 하는 일이 꼬이고 잘 풀리지 않거나 실패하게 되면 남의 탓, 주변 환경 탓으로 돌리다가 그것도 모자라면 조상을 잘못 만나 이꼴이 되었다고 조상을 들먹이며 자신의 잘못, 무능으로 인한 책임을 남에게 전가하는 못된 습성을 나타낸 말이다.

또 "은혜를 악으로 갚는다"라는 속담도 있다. 자신을 키워 주거나 도와 준 사람에게 은혜를 갚기는커녕 배신하고 피해를 주거나 괴롭히는 배은망덕을 저지르는 인간 쓰레기들의 행태를 두고 한 말이다.이러한 양아치 같은 부정적인 인간들의 모습은 물질만능주의가 만연하면서 우후죽순처럼 생겨났다.

근무하던 회사의 산업기술을 큰 돈과 높은 직급을 보장받고 경쟁회사에 넘겨주어 회사에 치명타를 가하는가 하면 영업비밀과 거래처를 가지고 나와 자신을 키워준 회사를 곤경에 빠트리는 반인간적 반사회적 악행을 저지르는 일이 비일비재하였다.

정치판은 한술 더 떳다. 정치에 입문시켜 공천을 주고 국회의원을 만들어준 정치적 대부를 치졸한 정치적 이해와 개인적 차원의 섭섭한 감정, 출세 때문에 배신을 하는 것도 모자라 한나라당의 강삼재, 이신범 전의원,민주당을 분당하고 대북송금 특검으로 은혜를 원수로 갚은 노무현 친노진영처럼 사람의 자식으로서 차마 할 수 없는 음해, 매도로 공격하는 반인륜적 행태로 인간의 도리를 어지럽히는데 앞장을 서곤 한 것이다.

이렇듯 동방무례지국, 동방 말세지국이 되어버린 비이성적사회가 한국의 참 모습이다. 이제 동방예의지국은 흘러간 옛 노래가 되어버렸다.

세상이 요즈음 같이 인면수심의 사회로 변한 마당에 그동안 우리나라를 도와준 미국의 역할을 도외시,망각하고 무조건적으로 물러가라고 오로지 민족주의 목소리를 높여대는 모습이야말로 너무나 당연한 모습인지도 모른다.이처럼 국가간 신의도 모르는 우리들이 진정 동방예의지국의 후손들이란 말인가? 정말 부끄럽기 일이 아닐 수 없다.

미국을 성토하고 미국 물러가라고 시위를 벌일 때마다 약방의 감초처럼 들고 나와 자신들의 행위를 합리화하고 쥐꼬리만한 명분으로 써먹는 것이 "민족주의" "민족자주"다.카톨릭 사제인 문정현 신부가 뜻을 같이 한다는 시민단체 회원들과 몇년전 군산 미군기지에 몰려가 백여회나 시위를 벌이고 제주 해군기지가 미군기지가 될 것이라며 입이 아프도록 외쳐대는 구호도 상대방의 역할은 도외시하고 우리의 입장에 서서 약간의 불편과 피해를 당하지 않겠다는 이기적,무조건적 민족주의, 민족자주다.

한미행정협정 개정운동,매향리 사격장 폐쇄, 시위를 주도한 시민단체나 숭미타파를 외친 민족자주파들의 주장도 마찬가지이다. 핵심은 민족주의와 민족자주성 회복이다. 김구 선생을 비롯한 애국지사들이 독립을 쟁취하기 위해 일본과 싸우면서 민족주의와 민족자주를 부르짖은 것과는 차원이 일백팔십도 틀린다.

애국지사들은 무력을 앞세워 남의 나라를 강제 병합한 적국 일본으로부터 조국과 민족을 해방시키기 위한 구국적, 애국적 차원의 확고부동한 명분이 생명인 민족주의, 민족자주정신으로 무장하였지만 요즈음 반미운동을 주도하는 진영은 우리나라를 일본의 압제로부터 해방시키고 공산주의 침략과 위협에 처한 우리나라를 구하기 위해 수많은 인명을 희생시켜 가며 우방으로서의 역할과 국제적 신의를 다한 미국을 무조건적인 민족주의로 매도하고 원수 대하듯 하고 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북한이 반미주의, 미제국주의 타도를 부르짖고 미국을 '철천지 원수' '승냥이 양키놈들'이라며 곧 잡아죽일 듯 이를 가는 것은 이해가 간다.북한으로서는 6.25전쟁시 민족 적화통일의 문턱에서 미국의 참전으로 좌절의 쓴 맛을 보았을 뿐 아니라 종전 후 오늘날까지 한미 상호방위 조약을 맺고 미군을 남한에 주둔시키는 바람에 적화통일의 기회를 더 이상 갖지 못하였다.

또 경제원조 등을 통해 남한의 경제발전을 이룩하는데 결정적으로 기여함으로써 남북한의 국력 격차를 심화시켰고 대북 경제제재로 북한을 초라한 빈곤국가로 만드는데 앞장섰으며 테러국가, 불량국가,악의축으로 낙인찍어 국제 사회에서 상대할 수 없는 망아지 국가라는 망신을 사게 하고 이단아로 따돌림 당하게 하였으니 미국이야말로 철천지 원수가 따로 없다고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북한도 국가 경제가 파탄나고 인민이 굶어 죽을 지경에 처하자 생존을 위해 통미봉남을 불사하며 철천지 원수인 미국과 일본과 관계개선에 매달리고 있다. 민족자주와 자력갱생으로 강성대국을 건설하겠는다는 의지는 좋았지만 실천이 불가능한 한낱 환상에 불과한 개꿈 같은 만용이었음이 드러났기 때문이었다.

북한이 미국과의 협상을 유리하게 이끌기 위해 들고 나온 핵무기와 미사일개발 카드는 최소한의 자존심이나마 지키고 싶은 고육지책일 뿐 겉으로 나타난 것처럼 원수의 나라인 미국과 관계를 개선하는데 있어 미국의 입장과 달리 북한으로서는 전혀 걸림돌이 아니다.어떻게든 관계를 개선하여 체제를 인정받고 경제지원을 받아 국가적 위기를 벗어나느냐가 최우선 목표이다 보니 적과의 악수도 서슴치 않는 것이다.

이처럼 북한도 맷돌에 갈아 마셔 버려도 시원치 않을 철천지 원수 미국과 좋아 지내려 나서고 있는 판인데 이제 살만하여 배가 뜨뜻해지니까 개구리 올챙이시절 모르는 경우처럼 어려웠던 시기 도움을 주었던 미국을 무조건적으로 배척한다는건 외교적으로나 동방예의국가 민족으로서 도의에 벗어나는 일이 아 닐 수 없다고 본다.

미국의 도움을 받아 이만큼이라도 여유있는 삶을 누리게 된 한국인으로서는 최소한 반미 '미제국주의 타도'를 운운할 자격이 없다. 미제국주의의 횡포, 강자의 논리, 미국의 속국, 예속, 종속 논리는 한국안보,경제발전 측면만 고려할 경우 우리나라와 한국 사람에게 만큼은 헛소리요, 지식을 악용한 궤변이요, 제놈 잘난체 하려는 말장난에 불과하다해도 할말이 없어야 한다.

한국이 이만큼 성장한 것은 우리 국민의 노력이 절대적인 것이었다는게 사실이지만 이에 못지 않게 미국에 힘입은바 큰데 그런 미국의 역할을 제국주의,민족주의 차원으로 접근하여 철저하게 무시하는게 과연 바람직한 것인가.

미국은 한국의 안보적 운명과 경제성장에 있어서는 백년지기 보다도 절친한 벗 이상이다. 이것은 사대주의나 아부가 아니다. 지나온 현대사, 한국의 성장사가 미국의 역할을 웅변으로 증명해 주고 있는 움직일 수 없는 사실을 그대로 표현한 것이다.

미국의 기여가 이러한데도 자신들만이 이 세상에 둘도 없는 애국자요, 참된 민족주의자인체 하며 오로지 무조건적인 숭미타파,반미를 내세우는 것은 치졸한 소영웅심, 현란한 선동적 글솜씨로 이름 값을 높이려는 공명심 말고 달리 설명할 수 없다.

물론 이들에게도 애국심과 국가관이 있는건 두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애국심 또한 반민주 친일사이비 보수패거리들의 애국으로 위장한 탐욕적,패권욕만큼 객관적이고 순수하지 못하다. 발휘해야 할 대상과 시기를 이용하는 부적절한 애국심이요 민족주의나 양심과 양식과 신의에 맞지 않고 정치의식 수준이 낮은 순수한 국민들의 애국심을 호도 악용하는 고도의 지식 사이비형 민족주의인 것이다.

한마디로 제 얼굴에 침뱉기를 낯가죽 두껍게 자행하고 있는 패거리들이 친일사이비 꼴통보수나 다름없는 민족 팔아 정치적 잇속을 챙기려는 무조건적인 반미진영들이다. 설혹 미국이 대한민국과 국민들에게 잘못을 저질렀다손 치더라도 그들의 잘못을 탓하기 이전에 근본원인이 무엇이고 책임이 어디에 있는지부터 제대로 살펴보는 주제 파악부터 먼저 이루어져야 한다는 점을 반미진영은 깨달아야 한다.

무조건적인 반미진영의 직계나 방계조상, 사돈의 팔촌까지 행적을 이잡듯이 뒤져보면 민주진영을 박살낸 과거 열린우리당의 친일 후손 개혁정치인들의 조상처럼 구한말 나라를 망치고 일제에 협력한 친일 매국노들이 없지 않을 것이다.

오늘을 살아가는 대한민국 국민들 가운데 애국지사나 쥐죽은 듯이 땅이나 파먹고 살아온 무지렝이 조상의 후예를 빼고는 대부분 나라를 결딴 낸 망국노, 친일매국노, 기회주의자들과 연결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이처럼 파렴치한 반민족주의자들 때문에 나라를 외세에 빼앗기고 부끄럽게도 일본과 야합하여 우리나라를 일본의 식민지로 용인했던 미국이라는 나라에 의해 해방과 정치, 경제, 군사, 외교적 지원, 보호를 받게 된 것이다.

미국이란 나라는 못난 우리 조상과 민족이 불러들여 의지하고 보호받기를 자청한 것이나 다름 없는데 미국을 비난한다는건 적반하장도 유분수요 대명천지에 제 얼굴에 침뱉기나 다름없다 아니할 수 없다. 민족주의를 팔아 자신들이 최고의 애국자인양 행세하도록 한것은 이들과 한우물을 파며 코드잔치를 벌인 노무현 정권의 책임이 크다.

애국지사들이 가꾸어 놓은 참된 민족주의, 민족자주 정신이 무조건적인 정치적 반미 슬로건 세력들에 의해 원칙없는 민족주의, 배은망덕한 민족자주로 둔갑하였다는건 불행한 일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배은망덕한 나라는 되지 말자

자국의 국익을 위해 약소 우방국을 키워서 잡아 먹는 것이 미국의 국가전략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러한 일부의 주장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와 관련해서는 아직까지 노골적으로 미국의 제국주의적 국가전략이 표면적으로 드러난 것은 없었다.

초강대국으로서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해 세력을 확대하고 세계 질서를 구축하는 과정에서 내정에 간섭하거나 경제제재, 무력사용을 동원한 경우가 없지 않았지만 이러한 힘의 논리보다 정치, 경제, 외교지원을 통해 우방국을 만드는데 미국은 더 많은 관심을 기울였다.

미국의 지원과 보호 협력으로 성장하여 미국과 대등한 입장에서 상호주의적 우호관계를 맺고 있는 우리나라가 대표적인 예라고 볼 수 있다.

미국이 자신들의 경제적 지원과 희생, 봉사를 통해 성장한 우방국에게 수입개방을 강요하고 무역제재를 가한다하여 섭섭하게 생각하거나 강대국의 횡포라고 비난할 수 없다.

미국이라 하여 어떻게 천년 만년 도움만 줄 수 있겠는가. 백척 간두의 위기에 처해 있던 국가와 민족을 위기에서 구해주고 자립하여 먹고 살만큼 도와 주었으면 본전은 못 건지더라도 약간의 수고비 정도는 생각할 수 있는 것이고 그게 또 인지상정 아니던가.

경제 성장을 돕기 위해 수십억 달러의 무상원조, 수백억 달러의 차관을 제공하고 그러한 경제원조를 바탕으로 내다 팔 물건을 만들어 내니까 최혜국 대우를 해 줘가며 사주기까지 하는 등 나라가 자신들의 도움으로 선진국이 되었으니 이제 우리 농산물도 사 줘가며 수출을 하라고 수입 개방을 요구한데까지는 강대국의 횡포라고 볼 수 없지 않은가.

생각 같아선 대가를 바라지 않고 무조건 사심없이 도와 주는 자선 사업가처럼 미국도 백날 천날 도와 주기만 하는 천사 나라이었으면 좋겠지만 이러한 생각은 어디까지나 상대방의 입장을 고려치 않는 도움 받는 쪽의 일방적인 희망 사항일 뿐이다.

도와주기만 하고 살만 할 때 되면 나가 떨어져 주길 바라는 것은 공짜만 좋아하는 이기적이고 비양심적인 심보에서 비롯된 것으로 신뢰를 바탕으로 한 호혜평등이라는 선린관계를 위해 결코 바람스럽지 못한 자세이다.

도움을 받았으면 은혜를 갚는 게 올바른 자세다. 개인이건 국가간이건 불가항력적인 특별한 상황이 아닌 한 오는 정과 받는 정에 대한 보답에 소홀히 해선 안된다. 또한 도움을 주는 과정에서 예기치 않게 발생한 사안이나 피해에 대해서도 불가피한 측면과 수혜자라는 입장을 염두에 두지 않고 자기 중심적 차원에서 형평과 피해 측면에만 집착하여 문제 해결에 접근하려 한다면 선린 우호는 깨지고 동물적 이전 투구 행태만 난무할 뿐이다.

6.25 한국전쟁 당시 미군에 의한 노근리 양민학살 사건도 전쟁이라는 특수한 상황을 십분 고려한 상태에서 문제가 논의되고 해결점을 찾아야 옳았다. 양민학살은 미군보다는 국군과 인민군, 빨치산 등 우리 민족이 서로 참혹하게 학살한 사건이 훨씬 많았다. 거창 양민학살사건, 요즈음 유해가 발굴되기 시작한 경남 산청 양민학살사건, 대전 수감자 집단 학살사건, 지리산 주변 등에서 빨치산과 토벌대가 번갈아 가며 저지른 학살사건 등 이루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다.

동족간 학살사건이 이렇게 많은데도 정작 정부와 군, 시민단체가 진실 규명을 위해 문제를 제기하고 진실을 파헤치는 노력을 보인 적이 거의 없었다.그런데 유독 미소의 기획과 지원하에 강행한 북측의 남침으로 인해 풍전등화의 위기에 빠진 대한민국을 구출하기 위해 전투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사건을 가지고 미국을 비인도적 살인마 집단으로 몰아 부칠 필요가 있었느냐이다.

미군 사격장 문제도 그렇다. 한미 방위조약에 의거 대한민국 안보의 한 축으로서 주한미군이 성공적으로 제 역할을 수행하려면 고도의 전투력 유지는 필수적이다. 따라서 싸워 이길 수 있는 전투력의 핵심요소이자 주요 전투수단인 폭격과 사격연습은 한시도 게을리 할 수 없다. 대한민국 안보를 위해 폭격과 사격훈련을 하겠다는데 훈련장을 폐쇄하라면 주한미군의 역할을 그만 두라는 것이나 다름없다.

한미행정협정 문제도 그렇다. 불평등조항은 개선되어야 당연하다. 다만 국가의 자존심과 자주성만을 내세워 한국안보를 지켜주기 위해 주둔하고 있는 미군에게 무조건 형평성만을 강요하는 것도 도리가 아닐 것이다.

도움을 받은 처지에 반미구호까지 외치며 무조건 평등한 수준으로 개정해야 한다며 우리 입장만 관철하려는 것도 지나치다고 할 수 있다.약간의 불평등, 자주성 훼손을 굴복으로 생각지 말고 도움에 대한 보답차원으로 여길 수도 있지 않은가 말이다.

미군이 범죄를 저질렀을 경우 형 판결, 이전 단계까지 만이라도 미군 당국이 미군의 사기를 고려하여 신병을 보호할 수 있기를 바란다면 조사에 어려움은 있겠지만 그렇게 해 줄 수 있을 법도 하다.사실 미군이 범죄를 저지르는 경우가 비일비재 할만큼 흔한 일은 아니다.

오다가다 가뭄에 콩나듯 저지르는 몇 몇 사건을 가지고 너무 야박하게 민족자주권을 걸어 몰아 부친다면 동맹국의 역할에 대해 회의를 느낄 것이다.그런데 다행스럽게도 요즈음 미국이 자세를 바꾸어 성폭행 미군의 신병을 신속히 인도하고 공개적으로 사과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어 다행이다.

한미행정협정 개정, 노근리 양민학살사건, 북핵문제 문제 해결을 위한 과정에서 보듯 우선 눈에 보이고 피부에 닿는 피해 현상, 피상적인 모습에만 집착하여 감정적으로 접근할 문제가 아니다. 국가와 민족의 생존, 한미 양국관계등을 면밀히 고려하여 그동안 쌓아 온 양국관계가 상처를 입지 않는 방향으로 문제 해결에 접근해야 한다.

다만 한미자유무역협정은 문제가 다르다.한미무역협정은 치열한 국익과 관련된 사안이다.우리나라가 그동안 미국의 도움에 힙입어 경제적 소강국 반열에 올라섰고 이렇게 도움을 준 미국이 경제적으로 어려워진 처지에 처한 특수한 상황이긴 하지만 향후 우리의 경제적 주권이 미국에 종속될 가능성이 높을마큼 우리에게 불리한 독소조항이 무려 17가지에 이르는 대표적 불공정협정인 본전뽑기식의 한미자유무역협정에 대한 이의제기와 반대는 당연하다.

따라서 숭미사대주의에 천착한 일방적 친미 사이비 보수진영이 부르짖는 한미FTA의 선동에 현혹되지 말아야 한다. 이럴때일수록 사회 지도층의 균형잡힌 역할이 중요하다. 정치권과 지도층은 국민들에게 미국의 역할과 수혜자로서의 우리 국민의 자세, 문제의 본질에 대해 소상하게 밝힐 것은 밝히고 설득할 것은 설득하되 미국에 국민의 뜻을 받들어 요구할 것은 요구하여야 한다.

또한 우리 조상,우리 정부가 제구실을 못한 죄로 경제적으로 미국의 도움을 받았으면서도 이러한 미국의 기여에 감사할 줄 모르고 일부 반미진영의 무조건적인 주의 주장에 몰입되어 중심을 잃고 있는건 아닌지 스스로 자문해 보아야 한다. 미국의 잘못된 정책이나 미군, 미국인이 저지른 사건에 대해 잘잘못을 가리고 비판하는 건 당연하지만 이러한 불공정한 정책과 사건을 빌미로 미국과 미국인 전체를 매도하고 배척하는건 바람직스럽지 못하다.

사법부 판사들까지 사법주권마저 내놓은 불공정협정이라고 주장하는 한미자유무역협정은 반드시 재협상을 통해 한미 양국이 윈윈하는 공정한 협정으로 수정하든지 아예 폐기하는 방향으로 결론을 내야 할 것이다.그러나 한미자유무역협정 갈등을 떠나 그동안 경제안보적 도움을 받은 처지에 미국의 국익 챙기기만을 문제삼는다는건 문제가 없지 않다고 본다.

좌는 우든 진보든 보수든 미국의 도움과 영향력에서 자유롭지 못한 처지를 인식하고 역사적 사실과 현실을 인정해야 한다.민족주의적 관점에서 제국주의로 규정하고 무조건적으로 적대시하거나 배척하는건 진실을 왜곡하고 역사를 부인하는 것이다.자기논리에 함몰되어 먼저 우호 관계를 깨뜨리는 비신사적인 나라,국민이 되지 말았으면 하는 바램이다. /브레이크뉴스http://break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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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1/12/07 [17:23]  최종편집: ⓒ pokro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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